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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지를 고를 때 포르투를 먼저 떠올리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리스본에 밀리고, 바르셀로나에 밀리고. 그런데 직접 걸어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포르투는 '보는' 도시가 아니라 '머무는' 도시였습니다. 상 벤투역에서 도우루강 변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으면서, 제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도시를 겉만 훑고 떠났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루이스 1세 다리 — 1886년이 지금보다 대담했던 이유
포르투를 처음 찾는 분들 중에는 루이스 1세 다리를 '그냥 예쁜 철교' 정도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다리 위에 올라선 순간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높이 85m, 상부 길이 395m. 수치로 읽을 때와 실제로 다리 위에서 발 아래를 내려다볼 때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이 다리는 1886년에 완공됐습니다.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브 에펠의 제자인 테오필 세이리그(Théophile Seyrig)가 설계했는데, 에펠탑이 완성된 게 1889년이니까 오히려 이 다리가 먼저입니다. 구조적 원리를 보면 에펠탑과 닮은 점이 많습니다. 아치 구조(arch structure)가 핵심인데, 여기서 아치 구조란 하중을 수직이 아닌 곡선으로 분산시켜 수평 방향의 힘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다리 위를 누르는 무게가 양쪽 기둥을 밖으로 밀어내는 힘으로 바뀌는 겁니다. 그 밀어내는 힘을 버트레스(buttress), 즉 외부 지지대가 받아내는 구조입니다.
더 흥미로운 건 구조 자체보다 이 다리가 도시를 어떻게 연결하느냐입니다. 1층은 자동차와 보행자가 다니고, 2층은 지하철이 지납니다. 하나의 다리에서 두 개의 높이로 도우루강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게 단순한 편의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강의 수심이 약 50m에 달해 큰 배가 드나들 수 있는 이 깊은 계곡에, 강북과 강남을 이렇게 밀착시킨 구조물이 19세기 말에 이미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솔직히 놀라웠습니다.
리벳 접합(rivet joint) 방식으로 조립된 철재 부재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리벳 접합이란 달궈진 금속 못을 구멍에 끼우고 두들겨 고정하는 방식으로, 용접 기술이 보편화되기 이전의 대형 구조물에 주로 쓰였습니다. 타이타닉호가 같은 방식으로 제작됐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공법이었습니다. 하나하나의 부재가 또 작은 트러스(truss, 삼각형 단위로 하중을 분산하는 구조 방식)로 이루어져 있어,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섬세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 다리를 낮과 저녁, 두 번 찾아간 이유도 그것 때문입니다. 낮에는 2층 상부에서 도시 전체를 조망하고, 저녁에는 1층 하부에서 강변을 따라 걸었습니다. 같은 다리인데 완전히 다른 포르투를 보여줬습니다. 강 건너편 빌라 노바 드 가이아(Vila Nova de Gaia) 쪽에서 바라보면, 포르투 구도심이 급경사면을 따라 겹겹이 쌓인 풍경이 펼쳐지는데, 이건 계획 도시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 완공 연도: 1886년 / 설계자: 테오필 세이리그 (에펠의 제자)
- 상부(2층): 포르투 메트로 D선 운행 / 하부(1층): 자동차·보행자 통행
- 아치 높이 85m, 상부 길이 약 395m — 완공 당시 세계 최장 아치교 중 하나
- 리벳 접합 방식 조립, 작은 트러스 단위 부재로 구성
- 도우루강 수심 약 50m — 대형 선박 입항 가능한 깊은 수로
포르투의 도시 지형 자체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출처: UNESCO 세계문화유산 — 포르투 역사지구를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포르투 역사지구는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중세 도시 구조가 얼마나 잘 보존됐는지에 대한 평가 근거가 상세하게 정리돼 있습니다.
포트와인 — 달콤한 맛 뒤에 숨은 전쟁의 역사
포트 와인을 단순히 '달콤한 디저트 와인'이라고만 알고 계신 분들도 있는데, 저는 와이너리에서 그 역사를 듣고 나서야 이 술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포트 와인은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의 산물입니다.
영국은 중세 시절부터 프랑스 보르도(Bordeaux) 지방의 와인을 즐겼습니다. 당시 영국은 보르도 지역까지 영토를 확보하고 있었기에 직접 생산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1337년부터 시작된 백년전쟁(Hundred Years' War)으로 영국이 보르도를 프랑스에 내어주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대안을 찾아 눈을 돌린 곳이 포르투갈이었고, 도우루강(Douro River) 상류 지역의 포도밭에서 와인을 만들어 영국으로 수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운송이었습니다. 포르투에서 영국까지 배로 이동하는 긴 항해 과정에서 와인이 식초로 변해버리는 일이 잦았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 발효 중간에 브랜디(brandy)를 첨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브랜디 첨가란 발효가 진행 중인 포도즙에 증류주를 넣어 알코올 도수를 높이고 효모의 활동을 강제로 멈추는 방식입니다. 발효가 중단되면 포도의 당분이 그대로 남아 달짝지근한 맛이 형성되고, 높은 알코올 도수 덕분에 장기 운송에도 변질되지 않게 됩니다. 이 방식으로 만들어진 와인을 '포르티파이드 와인(fortified wine)', 즉 주정 강화 와인이라 부릅니다.
제가 직접 방문한 그라함스(Graham's) 와이너리는 1820년에 설립된 곳으로, 도우루강 남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와이너리 내부에 들어서면 프랑스산 오크통들이 줄지어 있는데, 각 통마다 빈티지 연도가 새겨져 있습니다. 오크 숙성(oak aging)이란 와인을 오크나무 통 안에서 수개월에서 수십 년까지 보관하며 풍미를 발전시키는 과정으로, 오크 특유의 바닐라·향신료 향이 와인에 스며들게 됩니다. 통을 완전히 건조한 상태로 조립한 뒤 와인을 채우면 수분을 흡수한 나무가 팽창하면서 틈이 닫히는 원리인데, 이 물리적 원리 하나로 수십 년을 버티는 겁니다.
제 경험상 이건 마시기 전 역사를 알고 마시는 것과 그냥 마시는 것이 차이가 꽤 납니다. 1994년산을 한 모금 마셨을 때, 30년이 지난 해가 통 안에 압축돼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맛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달콤하면서도 깊은 뒷맛이 초콜릿이나 말린 과일과 비슷한 층위를 가지고 있는데, 그게 발효를 강제로 멈춰 남긴 당분의 맛이라고 생각하니 더 흥미로웠습니다.
포트 와인의 품질 등급 체계나 생산 기준에 대해서는 출처: IVDP(Instituto dos Vinhos do Douro e do Porto)에서 공식 자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IVDP는 포르투갈 도우루 및 포트 와인을 공식 관리하는 정부 기관으로, 포트 와인 관련 규정과 빈티지 인증 기준을 다루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포르투 여행 일정은 며칠이 적당한가요?
A. 최소 2박 3일은 잡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루이스 1세 다리를 낮과 저녁 두 번 가보고, 와이너리 투어와 구도심 골목 산책까지 하려면 하루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제 경우엔 3일 일정에도 못 가본 곳이 남았습니다.
Q. 상 벤투 기차역과 상 벤투 지하철역은 다른 건가요?
A. 네, 다릅니다. 상 벤투 기차역(São Bento Station)은 아줄레주 타일 벽화로 유명한 포르투의 상징적인 기차역이고, 상 벤투 지하철역은 건축가 알바루 시자(Álvaro Siza)가 설계한 별도 공간입니다. 지하철역은 단순하지만 공간을 3등분하는 동선 설계와 천장고 변화가 인상적이어서 건축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꼭 들러볼 만합니다.
Q. 포트 와인은 어디서 마시는 게 가장 좋나요?
A. 도우루강 남쪽, 빌라 노바 드 가이아에 있는 와이너리에서 직접 시음하는 걸 가장 추천합니다. 가격도 합리적이고 생산 과정을 보고 마실 수 있어서 맛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와인을 잘 모르는 분들도 포트 와인만큼은 달달해서 거부감 없이 드실 수 있습니다. 저는 그라함스 와이너리에서 마신 1994년산이 여행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잔이었습니다.
Q. 포르투 구도심은 리스본이랑 분위기가 다른가요?
A. 꽤 많이 다릅니다. 리스본은 1755년 대지진 이후 계획 재건된 부분이 많아 건물 규모가 크고 창문 패턴이 반복적입니다. 포르투는 중세 필지 구조가 훨씬 많이 남아 있어 골목 폭도 제각각이고 건물 높이도 들쑥날쑥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비계획적인 자연발생성'이 포르투를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포르투를 '작은 도시'라고 부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면적은 작지만 밀도가 다릅니다. 루이스 1세 다리 하나에 19세기 구조 공학의 정수가 담겨 있고, 포트 와인 한 잔에 백년전쟁부터 시작된 수백 년의 교역사가 녹아 있습니다. 천천히 읽어야 보이는 도시입니다.
제가 포르투에서 배운 건 결국 이겁니다. 도시를 이해하려면 랜드마크를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왜 그것이 그 자리에 그런 형태로 서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것. 그 질문을 품고 걸으면 포르투의 골목 하나하나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시 간다면 저는 상 벤투역에서 시작해 루이스 1세 다리를 낮과 밤으로 두 번 건너고, 그라함스 와이너리에서 빈티지 한 잔으로 마무리하는 루트를 똑같이 반복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