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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 테주의 주도 토리노는 한때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첫 수도였습니다. 로마나 피렌체처럼 먼저 떠오르는 도시는 아닌데, 제가 직접 가보니 왜 여기가 더 유명하지 않은지 오히려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기대를 한참 넘어선 사보이 왕궁, 솔직한 관람기
플릭스버스(FlixBus)가 한 시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토리노에 닿은 건 오후 3시가 다 돼서였습니다. 숙소도 역사 중심지랑 꽤 떨어진 곳이라 이동 시간을 추가로 잡아먹었고, 결국 왕궁에 도착했을 때는 몸 상태도 썩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들어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지금도 남습니다.
토리노 왕궁, 정식 명칭은 팔라초 레알레 디 토리노(Palazzo Reale di Torino)입니다. 사보이 왕가(Casa Savoia)가 수백 년간 북부 이탈리아의 정치 중심지로 삼았던 곳으로,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출범한 뒤 1865년까지 첫 수도로 기능했습니다. 여기서 사보이 왕가란 11세기부터 이탈리아 반도 북서부 일대를 지배하며 근대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유럽의 대표적 왕실 가문입니다.
외관만 보면 솔직히 그렇게까지 압도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내부로 발을 들이는 순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금빛 장식으로 뒤덮인 홀과 정교하게 조각된 천장, 어마어마한 규모의 갤러리까지, 전시물 하나하나가 다 화려해서 솔직히 이렇게까지 부유할 수 있나 싶은 현타가 오기도 했습니다.
왕궁 단지에는 왕실 무기고인 아르메리아 레알레(Armeria Reale)와 사보이 미술관(Galleria Sabauda)이 부속으로 연결되어 있어 한 번 입장하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무이 레알리 토리노(출처: Musei Reali Torino 공식 사이트) 기준 성인 입장료는 15유로, 18~25세는 2유로 할인 혜택이 있으며 매주 수요일은 정기 휴관입니다. 제 경우엔 컨디션이 나빠서 중간에 나왔는데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니, 몸 상태가 좋은 날 방문한다면 2~3시간은 너끈히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솔직하게 덧붙이자면, 왕궁이 아름다운 역사 유산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는데, 제가 그 화려한 내부를 보면서 동시에 든 생각은 '이 많은 자원이 어디서 흘러 들어온 걸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유럽 왕실의 건축 유산을 예술적으로 감상하는 시선도 있고, 그 이면의 역사적 맥락을 함께 바라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두 가지를 동시에 떠올리며 걷는 편이 오히려 더 깊이 있는 관람이 된다고 느꼈습니다.
- 팔라초 레알레 디 토리노(Palazzo Reale di Torino): 성인 15유로, 18~25세 2유로 할인, 수요일 정기 휴관
- 아르메리아 레알레(Armeria Reale): 왕실 무기 컬렉션, 왕궁 단지 내 포함
- 사보이 미술관(Galleria Sabauda): 사보이 왕가 수집 회화 소장, 입장권 통합 적용
- 왕궁 관람 후 카스텔로 광장(Piazza Castello) → 마다마 궁전(Palazzo Madama) → 산카를로 광장(Piazza San Carlo) 도보 연결 가능
비체린과 잔두이오토, 토리노 초콜릿 문화를 직접 맛본 후기
이탈리아 하면 에스프레소나 젤라토를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데, 토리노에서는 초콜릿이 도시 문화의 한 축을 이룬다는 점이 저한테는 꽤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16세기 사보이 왕가 시절부터 이어져 온 제조 전통이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도시입니다.
제가 직접 마셔본 것은 비체린(Bicerin)입니다. 비체린이란 에스프레소, 진한 다크 초콜릿 음료, 우유 크림을 층층이 담은 토리노 전통 음료입니다. 쉽게 말해 재료를 처음부터 섞지 않고 각각의 층이 입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마시는 방식인데, 이 점이 일반 카페라테나 핫초코와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저는 다크 초콜릿 베이스 전통 버전으로 주문했는데, 솔직히 예상만큼 다크하지는 않았습니다. 이탈리아 현지 기준으로 '전통적'이라는 게 한국에서 상상하는 쌉싸름한 다크와는 결이 좀 달랐습니다. 그래도 커피와 초콜릿이 크림과 함께 섞이는 경험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고, 카페 안의 분위기 자체가 음료 맛을 두 배로 올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비체린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콘솔라타 성당 인근의 카페 알 비체린(Caffè Al Bicerin)으로, 1763년부터 이어온 역사적인 공간입니다.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잔두이오토(Gianduiotto)입니다. 잔두이오토는 피에몬테 지역 특산 헤이즐넛을 다크 또는 밀크 초콜릿에 섞어 만든 작은 배 모양의 초콜릿으로, 1865년 토리노 카니발을 계기로 널리 알려졌다고 전해집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카페에서 한 조각 서비스로 받았는데, 고소함과 단맛의 균형이 묘하게 자꾸 생각나는 맛이었습니다. 기념품으로 사려다가 짐이 걸려서 포기한 게 아직도 아쉽습니다.
피에몬테 음식 문화 전반에 관심이 있다면 이탈리아 관광청 공식 자료도 참고가 됩니다(출처: Italia.it 공식 관광청). 초콜릿 외에도 아뇰로티 델 플린(Agnolotti del Plin, 피에몬테식 속파스타)이나 비텔로 토나토(Vitello Tonnato, 송아지고기에 참치 소스를 곁들이는 요리)처럼 이 지역 고유의 음식도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유벤투스 경기장과 마우토, 관심 없어도 가볼 만한 이유
토리노 이틀째, 숙소 바로 앞에 유벤투스 FC(Juventus FC)의 홈구장인 알리안츠 스타디움(Allianz Stadium)이 있었습니다. 제가 특별히 축구 팬은 아닌데, 지인 중에 유벤투스 광팬이 있어서 겸사겸사 굿즈샵에 들어가 봤습니다. 솔직히 팬이 아니어도 사고 싶어질 만큼 잘 뽑은 상품들이 많았습니다. 블랙 앤 화이트 컬러와 심플한 로고 덕분인지 일상에서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디자인들이 꽤 있었고, 결국 대리 구매를 좀 했습니다.
유벤투스 FC는 1897년 창단된 이탈리아 세리에 A의 대표적인 명문 구단으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소속했던 팀이기도 합니다. 경기장 투어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는데, 선수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공간과 시설을 둘러볼 수 있어서 축구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별도로 예약해 방문할 만합니다. 다만 경기 일정에 따라 접근 가능한 구역이 달라지므로 사전 확인은 필수입니다.
이날 오전의 하이라이트는 토리노 국립자동차박물관, 이탈리아어로 마우토(MAUTO, Museo Nazionale dell'Automobile)였습니다. 마우토란 자동차의 기술·디자인·산업사를 시대별로 정리해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단순히 자동차를 모아놓은 곳이 아니라 각 시대의 사회문화 변화를 자동차라는 물건을 통해 읽어낼 수 있도록 구성된 공간입니다. 딱히 자동차에 깊은 관심이 있다기보다 유명하다니까 가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토리노가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가 된 배경에는 1899년 이곳에서 설립된 피아트(FIAT, Fabbrica Italiana Automobili Torino)가 있습니다. 피아트란 '이탈리아 토리노 자동차 공장'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약자로,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화의 상징적인 기업입니다. 실제로 이탈리아 대기업 다수가 토리노를 근거지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 박물관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공식 운영 시간은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 월요일은 오후 2시에 문을 닫습니다. 관람에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를 잡는 편이 적당합니다. 역사 중심지에서 이동 거리가 있으므로 유벤투스 경기장과 묶어서 같은 날 방문하면 동선이 효율적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토리노 왕궁 입장료 할인이 실제로 되나요?
A. 무이 레알리 토리노 공식 기준으로 18~25세는 2유로 할인 입장이 가능하고, 18세 미만은 무료입니다. 다만 성인 15유로라는 금액이 아깝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는데, 제가 직접 다녀온 경험상 아르메리아 레알레와 사보이 미술관까지 포함된 규모를 감안하면 오히려 저렴한 편이라고 느꼈습니다. 방문 전 공식 사이트에서 당일 운영 여부를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Q. 비체린은 어디서 마시는 게 제일 좋아요?
A. 가장 유명한 곳은 콘솔라타 성당 인근의 카페 알 비체린(Caffè Al Bicerin)으로, 1763년부터 이어온 역사적인 공간입니다. 토리노 어디서나 비체린을 파는 카페를 찾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공간 분위기 자체가 음료 경험의 절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처음 방문이라면 이 카페에서 한 잔 마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Q. 토리노 여행은 며칠이 적당한가요?
A. 최소 2일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첫날에 토리노 왕궁과 역사 중심지 도보 관람, 둘째 날에 마우토와 알리안츠 스타디움 쪽으로 이동하면 주요 명소를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습니다. 토리노가 생각보다 면적이 넓고 주요 관광지가 분산되어 있어서 하루에 욕심껏 다 넣으려다 체력을 소진하기 쉽습니다. 제 경험상 하루 핵심 명소 한두 곳만 잡고 여유 있게 도는 게 만족도가 훨씬 높았습니다.
Q. 제노바에서 토리노로 이동할 때 플릭스버스 이용해도 괜찮나요?
A. 플릭스버스(FlixBus)는 가격 면에서 분명히 저렴한 선택지입니다. 다만 정시 도착을 보장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서, 당일 주요 관광 일정이 많다면 고속열차(이탈로, 트레니탈리아)도 비교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저처럼 버스가 한 시간 늦게 도착하면 숙소 위치에 따라 첫날 일정이 상당히 줄어들 수 있습니다.
결론
토리노를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밀라노보다 조금 더 정신없고 임팩트 있는 랜드마크 하나가 딱 튀어나오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볼거리가 없는 도시도 전혀 아닙니다. 사보이 왕가의 웅장한 왕궁과 궁전, 오래된 카페에서 마시는 비체린 한 잔, 피아트로 대표되는 자동차 산업의 역사, 유벤투스라는 축구 문화까지, 각각의 레이어가 한 도시 안에 고르게 쌓여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기대를 많이 하고 가면 뭔가 아쉬울 수 있고, 기대 없이 가면 예상 밖의 감동이 쌓이는 도시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도시가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이탈리아 북부를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밀라노 옆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짜리 경유지로 넘기지 마시고, 최소 이틀은 잡고 천천히 걷는 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