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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나 여행 (추초, 골목길 산책, 성벽 전망)

manymymoney 2026. 8. 21. 22:00

목차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로 40분. 저는 뭘 할지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그냥 무작정 지로나행 기차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이 도시는 계획 없이 와야 오히려 제대로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골목을 걷고, 우연히 들어간 가게에서 생애 최고의 브라우니를 먹고, 성벽 위에서 구시가지를 내려다보며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지로나는 그런 도시입니다.



    추초, 지로나에서만 제대로 된 맛을 만났습니다

    지로나에 도착해서 에펠 다리를 건너다 보니 출출해졌습니다. 마침 눈에 들어온 가게가 1898년부터 영업 중인 추초(Xuixo) 전문점이었습니다. 간판에 100년이 넘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솔직히 처음엔 그냥 관광지 분위기 맛집이겠거니 싶었습니다.

    추초(Xuixo)란 지로나 지역에서 유래한 카탈루냐 전통 튀김 과자입니다. 쉽게 말해 겉은 바삭하게 튀긴 꽈배기 빵인데 속에 크레마 카탈라나 계열의 크림이 들어 있습니다. 크레마 카탈라나(Crema Catalana)는 달걀노른자와 우유, 설탕을 졸여 만든 카탈루냐식 커스터드 크림으로, 프랑스의 크렘 브륄레와 비슷하지만 풍미가 조금 더 가볍습니다.

    제가 이전에 카탈루냐 다른 지역에서 추초를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솔직히 너무 기름지고 느끼해서 한 입 먹고 내려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았는데, 입에 넣는 순간 완전히 달랐습니다. 겉은 얇고 바삭했고, 속의 크림은 달되 무겁지 않았습니다. 초콜릿 크림이 들어간 버전을 먼저 먹었는데 "아, 이게 원래 맛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지로나에서는 2026년에도 '세계 최고의 추초'를 선발하는 대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이 정도면 그냥 간식이 아니라 지역을 대표하는 미식 문화라고 봐야 합니다. 지로나 구시가지를 걸을 계획이라면 에펠 다리 근처 오래된 추초 가게를 가장 먼저 찾아가시길 권합니다.

    • 추초는 지로나 발원의 카탈루냐 전통 튀김 디저트로, 속에 크레마 카탈라나 크림이 들어있습니다
    • 제대로 만든 추초는 기름지지 않고 겉은 바삭, 속은 부드러운 것이 핵심입니다
    • 1898년부터 운영 중인 구시가지 노포에서 오리지널과 초콜릿 크림 버전을 모두 먹어볼 수 있습니다
    • 지로나에서는 매년 최고의 추초를 선발하는 공식 대회가 열릴 만큼 지역 정체성과 연결된 음식입니다
    요약: 추초는 지로나를 대표하는 카탈루냐 전통 디저트로, 반드시 본고장 노포에서 먹어봐야 진짜 맛을 알 수 있습니다.

     

    골목길 산책 — 목적지 없이 걸을수록 더 좋아지는 도시

    추초를 먹고 나서 구시가지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이렇게 조용한 골목을 혼자 걷는 걸 정말 좋아합니다. 사람이 많으면 자꾸 신경이 분산되는데, 이날은 관광객이 적어서 제 속도대로 걸을 수 있었습니다.

    지로나 구시가지(Barri Vell)는 로마 시대부터 이어진 2,000년 이상의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구시가지 안에는 중세 유대인 지구인 엘 칼(Call)이 특히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엘 칼이란 중세 시대 유럽 도시 안에 형성된 유대인 거주 구역을 뜻하는 카탈루냐어로, 지로나의 엘 칼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온전하게 남아 있는 사례 중 하나로 꼽힙니다. 길 하나하나가 수백 년 전 그대로인 느낌이라 골목 자체가 전시물 같습니다.

    바르셀로나 고딕 지구(Barri Gòtic)와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제가 직접 비교해보니 결이 확연히 달랐습니다. 고딕 지구는 길이 좁고 건물이 빽빽하게 붙어 있어 에너지가 압축된 느낌이라면, 지로나 구시가지는 같은 중세 분위기이면서도 골목이 넓고 숨이 트입니다. 관광객 밀도도 낮아 제 경험상 이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걷기가 편했습니다.

    걷다가 골목 구석에 작은 바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야외 테이블 몇 개짜리인데 평점은 별로였지만, 제가 보기엔 맥주 한 잔 시켜놓고 골목 풍경 보기에 딱 좋은 자리였습니다. 평점 낮아도 분위기 좋은 데가 있다는 걸, 지로나 골목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지로나 구시가지의 골목 산책은 목적지를 정하지 않을수록 더 잘 어울립니다. 이 도시는 지도 없이 걸어야 제맛입니다.

     

    요약: 지로나 구시가지는 2,000년 역사를 간직한 골목 자체가 볼거리로, 바르셀로나 고딕 지구보다 여유롭고 한적하게 걷기 좋습니다.

     

    성벽 전망 — 지로나가 좋아지는 건 여기서부터입니다

    골목을 한참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로나 대성당(Catedral de Girona) 쪽으로 이어집니다. 대성당은 아래 광장에서 계단과 함께 올려다봐야 제대로 보입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는 것보다 멀리서 계단 전체와 함께 프레임에 담을 때 훨씬 웅장합니다.

    지로나 대성당은 고딕 양식(Gothic architecture) 건축물로, 고딕 양식이란 12세기 유럽에서 발전한 건축 양식으로 높은 첨탑과 플라잉 버트리스(Flying Buttress), 대형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특징입니다. 플라잉 버트리스는 벽면 외부에 설치된 아치형 지지대로, 두꺼운 벽 없이도 높고 넓은 내부 공간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구조물입니다. 대성당 뒤편을 돌아가면 이 플라잉 버트리스가 선명하게 보이는데, 앞면 못지않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내부에는 세계에서 가장 폭이 넓은 고딕 양식 석조 볼트 중 하나인 약 23m 폭의 대형 신랑(Nave)이 있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내부까지 들어가 보시길 권합니다(출처: 지로나 대성당 공식 사이트).

    대성당을 보고 난 뒤에는 성벽 위로 올라갔습니다. 지로나 성벽(Muralla de Girona)은 일부 구간을 직접 걸을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고, 곳곳에 탑이 전망대 역할을 합니다. 성벽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구시가지 지붕과 대성당, 그 너머 산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저는 이 뷰를 보고 한참을 자리를 못 떴습니다. 지로나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곳입니다(출처: UNESCO 세계유산센터).

    제가 처음 지로나에 왔을 때는 사실 성벽까지는 안 올라가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대성당 보고 골목 몇 바퀴 돌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성벽 전망을 직접 본 뒤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지로나 여행에서 성벽 산책을 빠뜨리는 건, 이 도시의 가장 중요한 장면을 놓치는 것과 같다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요약: 지로나 대성당은 광장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성벽 전망대는 구시가지 전체를 내려다볼 때 각각 이 도시의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지로나 당일치기가 가능한가요, 아니면 1박을 해야 하나요?

    A.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로 40분이라 당일치기 자체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다만 제가 직접 겪어보니, 오전에 도착해서 저녁까지 있어도 시간이 아깝지 않은 도시입니다. 골목 산책과 성벽 전망, 식사까지 여유 있게 즐기려면 최소 하루를 온전히 배정하는 편이 훨씬 만족스럽습니다.

     

    Q. 추초는 지로나 어디서 먹어야 제대로 된 맛인가요?

    A. 에펠 다리 근처에 1898년부터 운영 중인 노포가 있습니다. 제 경험상 다른 지역에서 먹었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고, 기름지지 않고 크림 밸런스가 잘 잡혀 있었습니다. 오리지널 크림과 초콜릿 크림 두 가지 버전을 모두 먹어보시길 권합니다.

     

    Q. 지로나 꽃 축제(Temps de Flors) 기간에 가면 더 좋은가요?

    A. 꽃 축제 기간에는 구시가지 골목과 성벽이 꽃과 설치미술로 꾸며져 시각적으로 매우 화려합니다. 2026년 행사는 5월 9일부터 17일까지 열렸습니다. 다만 그만큼 방문객도 급격히 늘어 골목이 혼잡해집니다. 조용한 산책을 원한다면 축제 시즌을 피해 평소에 오는 것이 오히려 지로나 본연의 분위기를 느끼기 좋습니다.

     

    Q. 지로나 대성당은 유료인가요?

    A. 외부 계단과 광장은 무료로 즐길 수 있습니다. 내부 입장은 유료이며, 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고딕 양식 석조 볼트 중 하나인 약 23m 폭의 신랑을 볼 수 있습니다. 정확한 입장료와 운영 시간은 방문 전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시는 걸 권합니다.

     

    Q. 지로나 구시가지를 걸을 때 주의할 점이 있나요?

    A.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건 편한 신발입니다. 지도 상 거리가 가까워 보여도 실제로는 돌바닥과 오르막, 계단이 계속 이어집니다. 중간에 발이 아파서 성벽을 못 올라가게 되면 그게 가장 아쉬운 일입니다. 운동화를 신고 오전 늦게 도착해 점심 먹고 여유롭게 걷는 일정이 이 도시에 가장 잘 맞습니다.

     

    결론

    지로나는 그날 특별히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닌데 집에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추초 한 입, 우연히 들어간 식당의 브라우니, 성벽에서 혼자 내려다본 구시가지 풍경. 이 작은 것들이 쌓여서 하루가 꽉 찬 느낌이었습니다.

    지로나는 하나의 압도적인 명소보다 골목 산책, 추초, 성벽 전망처럼 작은 경험들이 쌓이면서 좋아지는 도시입니다. 바르셀로나 여행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반나절 코스보다는 하루 온전히 배정하는 쪽을 권합니다. 저는 지로나에 올 때마다 결국 "다음에 또 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51hFDico1g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