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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요크 여행 (2000년 성벽, 민스터 탑, 요크셔 근교)

manymymoney 2026. 10. 25. 08:08

목차


     

    저는 요크(York)라는 도시를 몰랐습니다. 런던만 생각하고 영국행 비행기를 탔는데, 인천에서 12시간, 런던에서 다시 다섯 시간을 달려 도착한 이 작은 도시가 여행 전체에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인구 20만의 조용한 곳인데, 영국 왕 조지 6세가 "요크의 역사는 곧 영국의 역사"라고 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직접 걸어보고서야 알았습니다.



    2000년 성벽이 아직도 도시를 감싸고 있다는 게 믿기십니까

    요크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건물도 성당도 아니었습니다. 도심을 통째로 에워싼 성벽이었습니다. 로마인들이 이 땅을 지배하며 세운 이 방어 구조물은 그 뒤로 노르만 정복을 거치며 한 번 폐허가 됐다가 중세에 다시 재건됐습니다. 이후 수백 년 동안 성벽을 허물고 도시를 현대화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매번 요크 시민들이 막아냈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 성벽 위 산책로를 걸어봤는데, 발아래로 붉은 지붕들이 이어지고 멀리 요크 민스터(York Minster)의 탑이 솟아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멈춰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성벽은 단순한 관광 시설이 아니라 현재 요크 시민들의 삶과 맞닿아 있는 구조물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부삼 바(Bootham Bar) 쪽에서 시작하는 코스가 요크 민스터를 가장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어 제 경험상 가장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요크에서 또 한 곳, 샘블스(The Shambles)는 놓치면 후회할 골목입니다. 이름 자체가 고대 영어로 '푸주간, 도축장'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건물 1층보다 2층이, 2층보다 3층이 더 앞으로 튀어나온 독특한 구조는 과거에 위층 처마에 고기를 매달아 팔던 방식에서 비롯됐습니다. 지금은 기념품 가게와 베이커리들이 들어서 있지만, 아침 일찍 상점이 열기 전에 이 골목을 걸으면 오직 요크에서만 볼 수 있는 중세 도시의 질감이 느껴집니다. 제가 오전 8시 무렵에 혼자 걸었던 그 시간이 여행에서 가장 좋은 30분이었습니다.

    성문의 남쪽 출구는 중세에 반역자의 수급(首級)을 걸어두던 장소로 악명이 높았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 이 아름다운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의 두 얼굴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아름다움과 잔혹함이 같은 돌벽에 새겨져 있다는 것, 그게 요크를 단순한 '예쁜 도시'로만 볼 수 없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 요크 성벽: 로마 시대에 축조, 중세에 재건된 잉글랜드 북부 최대 규모의 도시 방어 시설
    • 부삼 바(Bootham Bar): 성벽 입구 중 요크 민스터 조망이 가장 좋은 출발점
    • 샘블스: 고대어 '도축장'에서 유래한 중세 상업 거리, 위층이 튀어나온 특유의 건축 구조 보존
    • 방문 최적 시간: 오전 8~9시, 관광객이 몰리기 전 중세 분위기 온전히 체험 가능
    요약: 2,000년 역사의 성벽과 샘블스 골목은 요크 시민들이 직접 지켜낸 중세 유산으로, 이른 아침에 방문할수록 진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요크 민스터 탑에 오르면 도시 전체가 한눈에 보입니다 — 다리가 버텨준다면

    요크 민스터(York Minster)는 북유럽 최대의 중세 고딕 성당으로 평가받습니다. 고딕 양식(Gothic architecture)이란 뾰족한 아치와 높은 천장, 빛을 끌어들이는 대형 창문을 특징으로 하는 중세 유럽의 건축 형식을 말합니다. 요크 민스터는 이 양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건물로, 1220년에 공사를 시작해 약 250년이 지난 1472년에야 완공됐습니다. 요즘처럼 몇 년 만에 고층 빌딩이 올라가는 시대에 태어나서 그런지, 여러 세대가 자신은 완성을 못 볼 줄 알면서도 쌓아 올린 건물이라는 사실이 저한테는 건물 자체보다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내부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건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입니다. 채색 유리에 납틀로 그림을 구성하는 이 기법은 중세 유럽 성당에서 문맹인 신도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시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요크 민스터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영국 최대, 중세 시대 것으로는 전 세계 최대 규모입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색이 시시각각 바뀌면서 돌바닥 위로 떨어지는 걸 보고 있으면, 이게 건축인지 빛의 예술인지 헷갈립니다.

    중앙탑 꼭대기까지는 좁은 나선형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공식 안내 기준으로 275개의 계단입니다. 저는 중간쯤에서 앞사람이 막혀 잠깐 멈췄을 때 괜히 내려가고 싶어졌는데, 막상 71m 높이의 탑 위에서 요크 전체를 내려다보는 순간 그 고생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체력에 자신이 없으시다면 탑 입장은 별도 예약이 필요하고 연령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제한이 있으므로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를 꼭 확인하시길 권합니다(출처: York Minster 공식 홈페이지).

    성당 뒷문으로 나오면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 동상이 서 있습니다. 그가 바로 이 요크 땅에서 황제로 즉위했고, 로마 제국 최초로 기독교를 공인한 인물입니다. 서양사의 거대한 전환점이 런던도 로마도 아닌 이 소도시에서 시작됐다는 게 저는 아직도 신기합니다.

    바이킹 역사가 궁금하다면 요르빅 바이킹 센터(JORVIK Viking Centre)를 함께 보는 걸 추천합니다. 40여 년 전 이 도시 지하 9m에서 대규모 바이킹 마을 유적이 발굴됐고, 그 발굴 현장 위에 박물관이 세워진 것입니다. 고고학(archaeology)이란 땅속에 묻힌 유물과 유구를 발굴해 과거 인류의 삶을 복원하는 학문인데, 이곳은 그 결과물을 이동형 체험 시설과 냄새 재현까지 더해 살아있는 전시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박물관 안에 들어서자 묘한 냄새가 났는데, 알고 보니 10세기 바이킹 마을의 냄새까지 복원했다는 겁니다. 역사를 이렇게까지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저로서는 예상 밖이었습니다(출처: JORVIK Viking Centre 공식 홈페이지).

    요약: 요크 민스터의 고딕 건축과 중세 스테인드글라스, 요르빅 바이킹 센터의 고고학 체험은 요크의 층위 깊은 역사를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핵심 명소입니다.

     

    요크셔 근교, 폐허와 호수가 같은 하늘 아래 있습니다

    요크 시내를 충분히 걸었다면 주변 지역으로 하루를 더 쓰는 게 좋습니다. 제가 직접 다녀보고 가장 기억에 남은 세 곳을 꼽는다면 네어스버러, 파운틴스 수도원, 그리고 레이크 디스트릭트입니다.

    네어스버러(Knaresborough)는 요크에서 서쪽으로 40분 거리에 있는 강변 마을입니다. 니드강 위로 거대한 철도 고가교가 지나가고, 강변 절벽 위에는 오래된 석조 주택들이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성터에서 내려다본 강변 풍경은 제가 영국에서 찍은 사진 중 지금도 가장 자주 꺼내보는 것입니다. 이 마을에는 1488년에 태어난 예언가 마더 십턴(Mother Shipton)의 탄생 동굴도 있습니다. 마더 십턴은 19세기 미국 남북전쟁이나 제2차 세계대전 같은 사건을 수백 년 전에 예언했다고 전해지는 인물로, 마을 사람들에게는 평생 마녀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관광 명소로 남아 있습니다.

    파운틴스 수도원(Fountains Abbey)은 제 경험상 이 지역에서 가장 예상을 뛰어넘은 장소였습니다. 1132년 요크 지역 수도사 13명이 세운 시토회(Cistercian Order) 수도원입니다. 시토회란 12세기 초 프랑스에서 시작된 가톨릭 수도회로, 기도와 노동, 검소한 생활을 핵심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이 수도원은 이후 400년간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수도원으로 성장했지만, 16세기 헨리 8세의 수도원 해산령으로 문을 닫고 폐허가 됐습니다. 무너진 아치와 기둥 사이로 하늘이 보이는 그 풍경이 완성된 건물보다 오히려 더 강렬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인접한 스터들리 로열 수상정원(Studley Royal Water Garden)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이동해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의 윈더미어(Windermere) 지역에 도착했을 때, 저는 솔직히 말해서 어린 시절 동화책 삽화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피터 래빗(Peter Rabbit)의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가 이곳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썼다는 게 이해됐습니다. 호수를 따라 걷다 만난 양 떼와 목장 풍경, 시시각각 색이 바뀌는 산과 수면은 어떤 필터도 필요 없는 그림이었습니다. 매년 전 세계에서 1,600만 명이 찾는 영국 최고의 국내 여행지라는 수식이 실감 났습니다.

    • 네어스버러: 강변 절벽 마을, 마더 십턴 동굴, 요크에서 차로 40분
    • 파운틴스 수도원: 1132년 시토회 창건, 헨리 8세 해산령 이후 폐허로 남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 맬럼 코브(Malham Cove): 빙하기에 형성된 석회암 절벽, 해리 포터 촬영지
    • 레이크 디스트릭트 윈더미어: 연간 방문객 1,600만 명, 피터 래빗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의 고향
    요약: 요크셔 근교의 폐허 수도원과 호수 지역은 요크 시내와 전혀 다른 결의 풍경을 제공하며, 하루 이상의 여유를 두고 방문할수록 깊이가 달라집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요크 여행은 며칠이 적당한가요?

    A. 요크 시내만 본다면 하루 반 정도면 주요 명소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다만 제 경험상 요크셔 근교까지 포함하면 최소 2박 3일은 잡는 게 여유롭습니다. 네어스버러나 파운틴스 수도원 중 한 곳을 더하면 일정의 밀도가 훨씬 달라집니다. 레이크 디스트릭트까지 욕심을 낸다면 하루를 더 추가하는 게 좋습니다.

     

    Q. 요크 민스터 탑 올라가는 건 예약이 필요한가요?

    A. 네, 중앙탑 입장은 성당 입장료와 별도로 비용이 발생하고 사전 예약이 가능합니다. 275개의 나선형 계단을 오르는 코스라 건강 상태나 연령에 따라 제한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방문 전 York Minster 공식 홈페이지에서 운영 일정과 조건을 확인하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제가 올랐을 때는 계단이 생각보다 훨씬 좁고 가팔랐습니다.

     

    Q. 샘블스가 해리 포터 촬영지라는 게 사실인가요?

    A.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알려진 경우가 많은데, 샘블스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공식 촬영지가 아닙니다. 요크셔 지역에서 실제 해리 포터 관련 촬영지를 찾는다면 맬럼 코브를 추천합니다. 이곳은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부의 공식 촬영 장소입니다.

     

    Q. 요르빅 바이킹 센터는 어린이와 함께 가도 괜찮은가요?

    A. 체험 위주의 전시 방식이라 어린이에게도 높은 만족도를 보이는 편입니다. 이동형 시설을 타고 10세기 바이킹 생활상을 둘러보는 방식이라 지루하지 않게 역사를 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인기 시간대에는 대기가 길어질 수 있어 온라인 사전 예약을 권장합니다.

     

    결론

    요크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런던의 압도적인 스케일도, 에든버러의 극적인 절벽 위 성도 없습니다. 대신 2,000년의 시간이 골목과 성벽, 지하 유적 위에 차곡차곡 쌓여 있고, 그걸 허물지 않고 지켜온 사람들의 선택이 지금의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이 여행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어떤 건물이나 유물이 아니라, 리폰의 공원 잔디밭에서 만난 한국전쟁 참전 용사 할아버지였습니다. 영국의 시골 공원에서 65년 전 우리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을 예고 없이 만나는 경험은 어떤 관광지도 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행은 결국 그런 예상 밖의 순간들로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요크와 요크셔는 그런 순간들이 자주 생기는 곳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p2V7Xzrny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