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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세비야를 그냥 지나쳐도 되는 도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바르셀로나의 성가정 성당처럼 압도적인 '원픽 명소'가 없다고 여겼거든요. 그런데 직접 걸어보니 틀린 판단이었습니다. 세비야는 계획한 것보다 계획 밖에서 더 강한 인상을 남기는 도시였습니다. 비가 내리던 스페인 광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야외 플라멩코, 현대 목조 건축물 지하에 숨겨진 로마 유적—이 도시의 진짜 매력은 그런 식으로 불쑥 찾아왔습니다.
스페인 광장, 기대보다 크고 비보다 아름다웠다
세비야는 인구 약 68만 명의 안달루시아(Andalucía) 주 중심 도시입니다. 안달루시아란 스페인 최남단에 위치한 자치 지역으로,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지배 역사가 가장 오래 남아 있는 곳입니다. 스페인 남부 특유의 붉은빛 건물 외벽, 야자수가 늘어선 거리, 골목마다 고개를 내미는 오래된 성당이 도시 전체의 색감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스페인 광장에 도착한 날은 오전부터 흐린 날씨였고, 광장 안으로 들어섰을 무렵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맑은 하늘 아래 사진을 찍겠다는 계획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죠. 그런데 오히려 비에 젖은 광장이 더 깊고 차분한 색감을 내고 있었습니다. 타일 장식의 광택이 빗물에 반사되면서 사진보다 실물이 더 인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스페인 광장은 1929년 이베로아메리카 박람회를 위해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Aníbal González)가 설계한 건축물입니다. 반원형으로 펼쳐진 건물, 운하, 다리가 하나의 거대한 앙상블을 이루고 있는데, 제가 사진으로 예상했던 것보다 실제 규모가 훨씬 컸습니다. 건물 아래쪽 벽면에는 스페인 각 지방 도시를 상징하는 아술레호(azulejo) 타일 장식이 줄지어 배치되어 있습니다. 아술레호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전통 채색 타일 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슬람 건축에서 기원해 이베리아 반도 특유의 장식 예술로 자리 잡은 기법입니다. 각 도시마다 그 지역의 역사적 장면이 다르게 묘사되어 있어서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세비야처럼 익숙한 지명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고, 처음 들어보는 도시 앞에서는 잠깐 멈춰 그림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출처: 안달루시아 자치정부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스페인 광장은 안달루시아를 대표하는 문화 유산 중 하나로 공식 지정되어 있습니다. 현지에서 직접 확인해보니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 주민들도 조깅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상적인 공간으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유명 관광지이면서 동시에 살아있는 도시 공원인 셈이죠.
플라멩코, 무대보다 광장에서 더 강렬했다
비가 세지면서 건물 처마 아래로 피했을 때, 광장 한편에서 기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플라멩코(Flamenco)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플라멩코란 안달루시아 지방의 민속 예술로, 무용수(bailaor/bailaora), 노래꾼(cantaor/cantaora), 기타 연주자(tocaor) 세 요소가 하나의 공연을 이루는 종합 예술 형식입니다. 화려한 발동작과 손짓, 그리고 특유의 거친 창법이 합쳐져 보는 사람에게 강한 감정적 충격을 전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제가 그날 본 공연은 화려한 조명이나 무대 장치가 전혀 없는 야외 공연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무용수가 발을 내딛는 순간 주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발동작에서 나오는 리듬, 가수의 목소리, 기타 선율이 광장의 빗소리와 함께 섞이면서 어떤 실내 공연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 있었습니다. 비를 피하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공연 주변으로 모여드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죠.
플라멩코는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UNESCO Intangible Cultural Heritage)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여기서 인류무형문화유산이란 유네스코가 소멸 위기에 처한 전통 문화 예술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하는 국제 제도를 의미합니다(출처: UNESCO 무형유산 공식 등재 페이지). 세비야는 그 중에서도 플라멩코의 발상지로 꼽히는 도시여서, 스페인 광장 같은 야외 공간에서도 수준 높은 공연이 자연스럽게 열리는 환경이 갖춰져 있습니다.
제 경험상 세비야에서 플라멩코를 보고 싶다면 굳이 전용 공연장을 예약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전용 타블라오(Tablao, 플라멩코 전용 공연장)에서 보면 더 가까이 세밀하게 볼 수 있지만, 광장이나 광장 주변 광장에서 우연히 만나는 야외 공연에도 충분한 밀도가 있습니다. 계획에 없던 비가 오히려 그날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만들어줬습니다.
- 플라멩코는 무용수, 노래꾼, 기타 연주자 세 파트가 하나의 공연을 구성하는 종합 민속 예술
-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
- 세비야 스페인 광장에서는 야외 공연이 수시로 열려 입장료 없이 관람 가능
- 타블라오(전용 공연장) 예약 없이도 현장에서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도시
메트로폴 파라솔, 오래된 도시에서 가장 낯선 건축
저녁에 구시가지로 이동하면서 가장 낯선 장면을 마주했습니다. 수백 년 된 건물이 이어지는 골목 사이에 거대한 목조 구조물이 홀연히 나타났습니다. 메트로폴 파라솔(Metropol Parasol)입니다. 현지에서는 생김새 때문에 '세비야의 버섯(Las Setas de Sevilla)'이라고 불리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버섯이라기보다는 거대한 나무 그늘이 도시 위에 펼쳐진 것처럼 보입니다.
메트로폴 파라솔은 독일 건축가 위르겐 마이어(Jürgen Mayer H.)가 설계하고 2011년 완공된 건축물입니다. 약 3,400개의 목재 패널을 이어 붙인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건물이 여기에 서 있는 데는 꽤 복잡한 역사가 있습니다. 원래 이 자리는 도심 재개발을 위한 공사가 예정된 부지였는데, 공사 도중 지하에서 로마 시대 유적이 발견된 겁니다. 스페인 정부는 공사를 중단하고 유적을 보존하면서 그 위에 새 건축물을 올리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결정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공사 기간이 크게 늘어나고 비용도 두 배 가까이 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건물 지하에는 발견된 로마 시대 유적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1세기경의 생활 흔적과 도자기 파편, 벽의 일부가 유리 아래로 보존되어 있는 공간입니다. 현대 목조 건축물 아래에 2,000년 전의 유적이 공존하는 이 장면은, 세비야라는 도시가 과거를 지우는 대신 쌓아올린다는 인상을 줬습니다.
전망대로 올라가자 세비야 대성당의 히랄다(Giralda) 탑과 주황색 지붕, 좁게 이어진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히랄다란 원래 이슬람 모스크의 미나렛(첨탑)으로 건설되었다가 레콩키스타(Reconquista, 기독교 세력의 이베리아 반도 재탈환 운동) 이후 기독교 종탑으로 개조된 역사적 구조물입니다. 낮에는 역사적인 도시로 느껴졌던 세비야가 밤이 되자 식당과 광장에 불이 켜지면서 완전히 다른 도시처럼 활기를 띠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세비야 스페인 광장 입장료가 있나요?
A. 광장 자체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단, 광장 내 보트 대여나 일부 구역에 별도 요금이 붙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건물 안쪽을 포함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고, 아술레호 타일 벽화를 감상하는 데 별도 비용은 없었습니다.
Q. 세비야에서 플라멩코 공연 꼭 예약해야 하나요?
A. 타블라오(전용 공연장)에서 보려면 사전 예약이 필요하고 입장료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광장 같은 야외 공간에서는 별도 예약 없이 현장에서 공연을 만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정이 유동적이라면 야외 공연을 먼저 경험해보고 타블라오는 선택적으로 추가하는 방식이 제 기준에서는 더 효율적이었습니다.
Q. 메트로폴 파라솔 전망대는 유료인가요?
A. 전망대 입장은 유료입니다. 음료 한 잔이 포함된 패키지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하 유적 전시 공간도 함께 볼 수 있어서 건물 한 번에 세비야의 가장 오래된 역사와 가장 현대적인 건축을 같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Q. 세비야 여행 최적 시기는 언제인가요?
A. 세비야는 여름(7~8월)에 기온이 40도를 넘기도 해서 야외 관광이 상당히 힘들어집니다. 제가 방문했던 시기처럼 흐리거나 비가 내리는 날도 있지만, 봄(4~5월)과 가을(9~10월)이 날씨와 관광 환경 면에서 가장 균형이 좋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4월에는 세비야 최대 축제인 페리아 데 아브릴(Feria de Abril)이 열려 도시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결론
세비야는 유명 관광지를 빠르게 체크하는 여행 방식보다 느리게 걸으면서 마주치는 것들에 더 잘 맞는 도시입니다. 제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장면은 정성껏 예약한 어떤 명소가 아니라, 비 때문에 처마 아래로 피하다 우연히 발견한 플라멩코 공연이었습니다. 스페인 광장의 아술레호 타일, 메트로폴 파라솔 지하의 로마 유적, 야경 속에서 더 활기를 띠는 구시가지까지—이 도시는 각각의 시간대와 날씨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줬습니다.
세비야 여행을 앞두고 있다면, 일정 중 반나절 정도는 아무 계획 없이 구시가지 골목을 걸어보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제 경험상 세비야의 진짜 매력은 목록을 지워가는 여행이 아니라 예상 밖의 순간에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