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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 계획을 짜다 보면 룩셈부르크는 흔히 "그냥 지나치는 나라"로 분류되곤 합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트램을 타는 데 한 푼도 안 들고, 71m 전망 엘리베이터도 무료고, 도심 한가운데서 중세 골목이 갑자기 나타나는 도시였습니다. "부자 나라"라는 말이 추상적인 숫자로만 느껴졌는데, 룩셈부르크에서는 그게 실제 여행 경험으로 바로 연결됩니다.
무료 대중교통과 파펜탈 전망대 — 돈을 안 써도 되는 도시
유럽 여행에서 교통비는 생각보다 크게 나옵니다. 도시 간 이동은 물론이고 시내 트램 한 번에도 2~3유로씩 빠져나가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룩셈부르크의 무료 대중교통 정책은 처음 접했을 때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납니다.
룩셈부르크는 2020년 3월부터 국내 버스·트램·일반열차 2등석을 전면 무료로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전국 대중교통 무료화를 선언한 나라입니다(출처: Luxembourg Government Portal). 외국인 관광객도 별도의 승차권 없이 그냥 탑승하면 됩니다. 단, 열차 1등석이나 독일·프랑스·벨기에로 넘어가는 국경 구간은 요금이 발생하니 이 점은 미리 알아두는 게 좋습니다.
제가 직접 트램을 타봤는데, 시설이 예상보다 훨씬 현대적이었습니다. 공짜라서 낡고 허름할 거라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서울 지하철보다 내부가 더 깔끔하다고 느꼈습니다. 강아지도 함께 탑승 가능한 점도 인상적이었고요.
트램을 타고 가면 닿는 파펜탈 파노라마 엘리베이터(Panoramic Elevator of the Pfaffenthal)도 무료입니다. 여기서 파노라마 엘리베이터란 시내 상부와 계곡 아래 파펜탈 지구를 수직으로 연결하는 유리 승강기를 말합니다. 높이가 약 71m인데, 올라가는 내내 룩셈부르크 구시가지와 알제트 계곡이 유리창 너머로 펼쳐집니다. 이런 걸 입장료 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룩셈부르크 시티는 높은 지대의 구시가지와 아래쪽 계곡 마을이 층층이 이어지는 지형 구조를 가지고 있어, 조금만 걸어도 전망이 계속 달라집니다. 슈맹 드 라 코르니슈(Chemin de la Corniche)는 그룬트 지구와 알제트 계곡을 내려다볼 수 있는 대표 산책로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코니'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룩셈부르크다운 뷰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꽤 있기 때문에 운동화는 필수입니다.
- 버스·트램·일반열차 2등석 — 국내 구간 전면 무료 (외국인 포함)
- 파펜탈 파노라마 엘리베이터 — 높이 71m, 무료 이용
- 슈맹 드 라 코르니슈 — 알제트 계곡 조망 산책로, '유럽의 아름다운 발코니'
- 아돌프 다리(Adolphe Bridge) — 개통 당시 세계 최대 규모 아치형 다리, 일몰 뷰 명소
전통음식: Judd mat Gaardebounen과 스푼 초콜릿 — 룩셈부르크 입맛 탐방
룩셈부르크는 독일·프랑스·벨기에 세 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어서 음식에서도 그 영향이 뒤섞여 있습니다. 처음엔 전통음식이라고 해서 어떤 맛일지 감이 안 잡혔는데, 막상 먹어보니 한국인 입맛에도 꽤 잘 맞았습니다.
Judd mat Gaardebounen은 룩셈부르크를 대표하는 전통 음식입니다. 여기서 Judd mat Gaardebounen이란 훈제한 돼지 목살에 잠두콩(broad bean)을 곁들인 요리를 뜻합니다. 족발처럼 생겼다는 첫인상과 달리 고기가 굉장히 부드럽고 짠맛이 과하지 않습니다. 베이컨과 강낭콩이 어우러지는 방식이 우리나라 보쌈에 나물 반찬 곁들이는 느낌과 묘하게 비슷해서 제 경우엔 생각보다 거부감 없이 한 접시를 다 비웠습니다.
룩셈부르크 전통음식 가운데 현지인들도 꾸준히 먹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이걸 피하고 익숙한 파스타나 피자만 찾는 건 조금 아깝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낯선 나라 음식은 일단 한 번 넘기기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저는 이 메뉴만큼은 적극 추천하는 쪽입니다.
디저트 코스로는 대공궁(Grand Ducal Palace) 바로 맞은편에 있는 Chocolate House Naïfs Bons이 빠질 수 없습니다. 이 가게에서는 핫쇼콜라 스푼(Hotchocspoon)을 판매합니다. 핫쇼콜라 스푼이란 진한 초콜릿이 스푼에 통째로 굳어 있는 형태로, 뜨거운 우유에 담가 천천히 녹이면 시중 핫초코와는 차원이 다른 진한 음료가 됩니다. 제가 직접 먹어봤는데, 목을 넘어갈 때 느껴지는 부드러움이 다른 핫초코와는 달랐습니다. 과장처럼 들릴 수 있지만 제 경험상 지금까지 먹어본 핫초코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자면, 룩셈부르크는 외식비가 결코 저렴한 여행지가 아닙니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 한 나라의 경제 규모를 인구로 나눈 지표)가 세계 최상위권 수준인 만큼 물가도 그에 비례합니다(출처: World Bank GDP per capita). 교통비를 거의 쓰지 않는 대신 점심은 구시가지 주변 베이커리나 슈퍼마켓에서 간단히 해결하고, 저녁 한 끼 정도만 Judd mat Gaardebounen 같은 전통음식으로 채우는 방식이 예산 관리 측면에서 실용적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룩셈부르크 대중교통이 진짜 외국인도 무료인가요?
A. 맞습니다. 2020년 3월부터 시행된 무료 대중교통 정책은 거주민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별도의 교통카드나 승차권 없이 그냥 탑승하면 됩니다. 단, 열차 1등석과 국경을 넘는 구간은 요금이 발생하므로 이 점만 미리 확인하시면 됩니다.
Q. 룩셈부르크는 하루 일정으로도 충분한가요?
A. 하루로도 핵심 지역을 꽤 볼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분위기를 천천히 즐기려면 1박 2일이 낫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제 경험상 파펜탈 전망대, 슈맹 드 라 코르니슈, 대공궁 주변, 헌법광장 일몰까지 보려면 하루 일정이 꽤 빡빡합니다. 인근 브뤼셀이나 프랑크푸르트와 묶는 경우 하루 경유지로 계획하는 경우가 많지만, 가능하다면 1박을 넣는 것이 여유롭습니다.
Q. Judd mat Gaardebounen은 어디서 먹을 수 있나요?
A. 구시가지 주변 전통 레스토랑이나 브라스리(brasserie, 가벼운 음식을 함께 파는 캐주얼 식당 형태)에서 메뉴에 올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광객이 많은 식당보다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곳에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평이 있고, 저도 그 쪽이 더 낫다고 봅니다.
Q. 룩셈부르크 헌법광장은 그냥 광장인가요?
A. 단순한 광장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곳이 역사적 맥락을 알고 가면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장소라고 봅니다. 황금빛 여신상 아래에 제1차 세계대전부터 한국전쟁(1951~1954년)까지 참전 기념비가 새겨져 있습니다. 룩셈부르크가 6·25 전쟁에도 참전한 나라라는 사실을 이곳에서 처음 알게 됩니다. 일몰 시간에 맞춰 방문하면 경치와 역사적 의미를 함께 챙길 수 있습니다.
결론
룩셈부르크는 파리나 로마처럼 압도적인 랜드마크 하나로 기억되는 도시가 아닙니다. 최신식 트램을 타다가 몇 걸음만 걸으면 중세 성벽이 나오고, 금융 빌딩 숲 바로 아래 계곡에 낮은 주택들이 줄지어 있는 신구 조화(新舊 調和)가 이 도시의 정체성입니다. 신구 조화란 현대적 도시 기반 시설과 역사 유산이 충돌 없이 공존하는 도시 설계 방식을 말하는데, 유럽 도시들이 이 부분을 잘한다고 흔히 말하지만 룩셈부르크는 그 안에서도 특히 밀도가 높다고 제 경험상 느꼈습니다.
무료 대중교통 덕분에 이동 비용 부담 없이 하루를 설계할 수 있고, 전망대와 산책로에서 어느 방향을 찍어도 엽서 같은 사진이 나옵니다. 저는 유럽 주요 대도시가 조금 익숙해진 시점에 룩셈부르크에 갔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1박 2일 일정으로 브뤼셀이나 프랑크푸르트와 묶어서 가는 코스를 고민 중이라면, 룩셈부르크를 단순 경유지가 아닌 독립된 목적지로 넣어보는 것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