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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여행을 계획할 때 베를린과 뮌헨만 떠올린다면, 사실 독일의 절반도 못 보고 돌아오는 셈입니다. 제가 처음 트리어(Trier)에 발을 들였을 때, 기원전 1세기에 로마인들이 세웠다는 도시가 지금도 사람들로 북적인다는 사실이 솔직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2천 년이 넘는 시간이 거리 한복판에 아무렇지 않게 서 있었으니까요.
중세 도시에서 로마 유적까지 — 독일 역사 여행의 깊이
독일이 현대 산업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한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트리어 거리를 걸어보니, 그 선입견이 첫 골목에서 바로 무너졌습니다. 트리어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로마 제국이 이 지역을 아우구스타 트레베로룸(Augusta Treverorum)이라는 이름으로 도시를 건설한 것이 기원전 16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쉽게 말해, 로마 황제들이 실제로 머물렀던 도시가 지금도 사람들의 일상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가장 먼저 마주친 건 포르타 니그라(Porta Nigra)였습니다. 포르타 니그라란 라틴어로 '검은 문'을 뜻하며, 2세기경 로마가 쌓은 석조 성문으로 현재까지 북알프스 이북에 남아 있는 로마 시대 건축물 중 가장 잘 보존된 것 중 하나입니다. 사진으로 수십 번 봤는데도 실제로 마주하니 크기 자체가 달랐습니다. 검게 그을린 돌 하나하나에 세월의 무게가 담겨 있었고, 저는 한동안 그냥 서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트리어의 로마 유적지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UNESCO World Heritage Site)으로 등재되어 있는데, 여기서 세계문화유산이란 유네스코가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고 인정한 장소를 국제적으로 보호하는 제도를 말합니다(출처: UNESCO World Heritage List).
트리어에서 두 시간 거리에는 라인슈타인 성(Rheinsteinburg)이 있습니다. 9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이 중세 성채는 같은 가문이 대를 이어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라인강을 따라 이어지는 유람선을 타고 성을 바라보는 경험은, 모젤강(Mosel) 유역의 화이트 와인 한 잔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14유로입니다.
중세 도시라면 퀘들린부르크(Quedlinburg)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작센안할트(Sachsen-Anhalt)주에 위치한 이 도시는 1100년이 넘은 목골 건축물들이 거리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어,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속 배경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리고 바바리아(Bavaria)주의 로텐부르크 옵 데어 타우버(Rothenburg ob der Tauber)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중세 성곽 도시 중 하나입니다. 도성(Stadtmauer) — 즉 중세 시대 도시를 둘러싸던 성벽 — 위를 직접 걸으며 구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경험은, 관광객이 몰리는 낮 시간을 피해 오전 9시 이전이나 해 질 무렵에 방문할 것을 권합니다. 제 경험상 이른 아침의 로텐부르크는 사람도 없고, 빛도 달라서 완전히 다른 도시처럼 느껴집니다.
- 트리어(Trier): 독일 최고(最古) 도시, 포르타 니그라 및 로마 욕장 유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라인슈타인 성(Rheinsteinburg): 900년 역사의 중세 성채, 입장료 성인 14유로, 모젤 와인 체험 추천
- 퀘들린부르크(Quedlinburg): 1100년 이상 된 목골 건축 중세 도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로텐부르크 옵 데어 타우버(Rothenburg ob der Tauber): 중세 도성(Stadtmauer) 보존, 오전 9시 이전 방문 추천
검은 숲에서 독일 최고봉까지 — 자연경관과 숨은 명소
독일의 자연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입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풍경이 한 나라 안에 펼쳐져 있었고, 어느 지점에서는 캐나다나 스위스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즉 '검은 숲'은 독일 서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주에 위치한 광활한 침엽수 산림 지대입니다. 여기서 슈바르츠발트란 빽빽한 전나무와 소나무 숲이 멀리서 보면 검게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자전거 트레킹, 등산, 겨울 스키까지 사계절 내내 야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5월부터 10월이 여행 최적기로 알려져 있으며, 뻐꾸기 시계(Kuckucksuhr)의 발원지이기도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뻐꾸기 시계를 직접 볼 수 있는 장소도 이 숲 안에 있습니다.
파르나클람(Partnachklamm) 계곡은 독일 남부 바바리아주의 숨은 명소 중 하나입니다. 파르나클람이란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Garmisch-Partenkirchen) 인근에 위치한 협곡으로, 수직으로 솟은 절벽 사이를 파고드는 폭포와 급류가 장관을 이룹니다. 물살이 강해서 한국 계곡처럼 발을 담그기는 어렵지만, 잘 조성된 등산로가 협곡 안쪽 깊숙이 이어져 있어 걷는 내내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제가 들은 말 중에 "비 오는 날 파르나클람이 더 아름답다"는 표현이 있었는데, 실제로 흐린 날 습기가 가득 찬 협곡의 이끼와 물안개는 맑은 날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튼튼한 등산화와 우산을 꼭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독일에서 가장 높은 산은 추크슈피체(Zugspitze)로, 해발 2,962m에 달합니다. 빙하 등산 코스와 전망대가 잘 조성되어 있고, 겨울에는 스키와 스노보드도 가능합니다. 추크슈피체 인근의 아이브제(Eibsee)와 쾨니히스제(Königssee)는 에메랄드빛을 넘어 거의 유리처럼 투명한 호수로, 여름이면 수영까지 즐길 수 있습니다. 독일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뤼겐섬(Rügen)의 백악 절벽(Kreidefelsen)이 기다립니다. 이 절벽은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그림 모티브가 된 것으로 유명하며(출처: Staatliche Museen zu Berlin), 넓은 해변과 함께 산책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작센 스위스(Sächsische Schweiz), 정식 명칭 엘프사암게비르게(Elbsandsteingebirge)는 독일 동쪽 작센(Sachsen)주와 체코 국경 지대에 걸쳐 있는 사암 산악 지대입니다. 바스타이브뤼케(Basteibrücke)라는 돌다리는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포토 스폿으로, 기묘한 형태의 암반 위에 놓인 다리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등산의 피로를 단번에 날려줄 만큼 압도적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트리어는 독일 여행 일정에 넣을 만한 가치가 있나요?
A. 제 경험상 이건 단연 '예스'입니다. 큰 기대 없이 갔다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도시가 트리어였습니다. 포르타 니그라 하나만 봐도 반나절이 훌쩍 지나고, 노천카페에 앉아 모젤 와인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갑니다. 프랑크푸르트나 쾰른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도 충분한 거리입니다.
Q. 로텐부르크 옵 데어 타우버는 언제 가는 게 제일 좋아요?
A. 관광객이 워낙 많아서 낮 시간대는 도성 위에 서 있기도 빡빡할 때가 있습니다. 오전 9시 이전이나 해 질 녘 이후에 방문하면 골목이 훨씬 조용하고, 중세 도시의 분위기가 제대로 살아납니다.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의 야경도 압도적으로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Q. 파르나클람 계곡 등산, 초보자도 갈 수 있나요?
A. 전문 등반 코스는 아니지만, 협곡 안쪽은 바닥이 젖어 있고 경사가 있어 일반 운동화로는 미끄러울 수 있습니다. 방수 기능이 있는 트레킹화나 튼튼한 등산화를 신고 가는 것이 좋고, 날씨가 흐린 날도 오히려 분위기가 좋아서 일부러 찾는 여행자들도 있습니다. 왕복 2~3시간 정도를 여유 있게 잡으시면 됩니다.
Q. 독일 여행에서 유명 도시 말고 꼭 하나만 추가한다면 어디를 넣는 게 좋을까요?
A.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트리어, 자연을 좋아한다면 파르나클람 계곡이나 추크슈피체 인근 호수를 추천합니다. 제 경우엔 트리어에서 보낸 하루가 뮌헨에서 보낸 이틀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일정이 빠듯하더라도 반나절만 할애해도 충분히 다른 독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결론
독일은 베를린의 현대성과 뮌헨의 맥주 축제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트리어에서 로마 유적지 사이를 걷고, 포르타 니그라 앞에서 한참을 서 있던 그 시간이, 어떤 화려한 랜드마크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역사 박물관이었고, 현지인들의 일상이 그 한가운데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정리하면, 독일 여행에서 시간이 허락한다면 중세 도시와 자연경관을 하나씩 일정에 더하는 것을 강하게 권합니다. 퀘들린부르크나 로텐부르크처럼 덜 알려진 도시, 파르나클람 계곡이나 뤼겐섬 같은 자연 명소는 검색 한 번이면 금방 찾을 수 있지만, 실제로 발을 디뎌보기 전까지는 그 온도를 알 수 없습니다. 한 나라의 진짜 매력은 유명 관광지의 줄 서기가 아니라, 그 사이 여백에서 발견된다는 걸 트리어가 가르쳐 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