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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프트 여행 (종탑, 페르메이르, 하링)

manymymoney 2026. 10. 31. 20:41

목차


    유럽 여행에서 암스테르담만 보고 돌아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델프트에 하루를 쓰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신교회(Nieuwe Kerk) 종탑 꼭대기에서 붉은 지붕이 끝없이 펼쳐지던 그 광경은, 솔직히 말하면 올라가기 전까지는 기대도 안 했던 장면이었습니다.



    376개 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신교회 종탑과 구교회

    델프트 중앙역에 내리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역사 자체가 현대적으로 리모델링되어 있는데, 밖으로 나오면 바로 고딕 양식(Gothic style)의 첨탑이 눈에 들어옵니다. 고딕 양식이란 중세 유럽 건축에서 발전한 형식으로, 높이 솟은 뾰족한 탑과 아치형 창문이 특징입니다. 이 극적인 대비가 델프트의 첫인상이었습니다.

    마르크트 광장(Markt)에 도착하면 광장 한쪽에 신교회가 보입니다. 이곳은 네덜란드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라녜 공 빌럼 1세의 영묘(靈廟)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영묘란 왕족이나 귀족의 유해를 모신 기념 무덤을 말합니다. 네덜란드 왕실의 묘역이 이곳에 이어져 있으니, 역사적으로도 단순한 교회 이상의 무게감이 있는 장소입니다.

    종탑에 오르는 일은 생각보다 고됩니다. 제가 직접 올라가봤는데, 전체 높이 약 108.75m의 탑을 약 376개의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합니다. 계단은 두 사람이 나란히 서기 어려운 좁은 나선형 구조라, 내려오는 사람과 마주치면 한쪽이 대기 공간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올라가는 중간에 종이 달린 공간도 나오는데, 그 추가 앞뒤로 움직이는 걸 직접 보는 경험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다 올라왔다 싶을 때 또 계단이 나오고, 그게 끝나도 또 나옵니다. 솔직히 중간에 내려갈까 하는 생각이 몇 번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상 약 85m 지점의 전망 공간에 올라서는 순간, 그 고생이 순식간에 잊혔습니다. 붉은 기와지붕이 운하를 따라 이어지고, 맑은 날에는 로테르담과 헤이그 방향까지 조망이 트입니다. 제가 꼭대기에 혼자 있던 그 몇 분은, 이번 네덜란드 여행 전체를 통틀어 가장 고요하고 선명한 순간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신교회에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구교회(Oude Kerk)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구교회는 1200년대부터 형성된 건물로, 약간 기울어진 종탑이 특징입니다. 내부에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가 남아 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란 색유리를 조각내어 납으로 이어붙인 교회 특유의 창문 장식으로, 빛이 들어올 때 색채가 내부 공간 전체를 물들입니다. 구교회 안에는 현대 작가들의 설치 작품도 함께 전시되고 있어서, 오래된 건축과 현대 예술이 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모습이 묘하게 어울렸습니다. 화가 페르메이르의 묘소도 이곳에 있습니다.

    • 신교회와 구교회는 통합 입장권으로 관람 가능하며, 종탑은 별도 요금이 적용됩니다.
    • 종탑은 교회보다 일찍 문을 닫고 악천후 시 출입이 제한될 수 있으니 일정의 앞쪽에 배치하는 것이 좋습니다.
    • 엘리베이터가 없으므로 체력에 자신이 없거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경우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 신교회 종탑 정보는 출처: Oude en Nieuwe Kerk Delft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약: 신교회 종탑은 376개 계단을 올라야 하지만, 꼭대기에서 보이는 델프트 구시가지의 전경은 그 수고를 충분히 보상해 줍니다.

     

    원화 없는 미술관에서 더 많이 배운 이유 — 페르메이르 센터와 하링

    페르메이르 센터(Vermeer Centrum Delft)에 들어가기 전, 저는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원화(Original Painting)가 한 점도 없는 미술관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화란 작가가 직접 제작한 유일한 진품 작품을 의미합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가 1632년 델프트에서 태어나 1675년 사망할 때까지 남긴 작품은 총 37점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그 전부가 전 세계 각지의 미술관에 흩어져 있습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원화는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Mauritshuis)에 소장되어 있습니다(출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공식 사이트).

    그런데 막상 들어가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전시는 단순히 그림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페르메이르가 어떤 안료(Pigment)를 사용했는지, 그 색을 어떻게 만들어냈는지를 실물 자료와 함께 보여줬습니다. 안료란 그림의 색상을 만드는 기본 재료로, 당시에는 귀한 광물을 직접 갈아서 색을 냈습니다. 그중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에서 추출한 울트라마린 블루는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쌌을 정도였습니다. 페르메이르가 그 파란색을 그토록 아껴서 썼던 이유가 이 설명 하나로 단번에 이해됐습니다.

    전시 중에는 6,000개의 작은 조각으로 만든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입체 작품도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눈앞에서 봤는데,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하나하나의 조각이 보이지만 조금만 뒤로 물러서면 소녀의 얼굴이 완벽하게 살아납니다. 원화보다 더 오래 들여다보게 만드는 물건이었습니다.

    페르메이르가 구도를 잡는 데 활용했다고 알려진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 기법도 이곳에서 처음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카메라 옵스쿠라란 어두운 방의 작은 구멍으로 들어온 빛이 맞은편 벽에 외부 풍경을 거꾸로 투영하는 원리로, 화가들이 정확한 원근감과 빛의 방향을 파악하는 데 활용했던 도구입니다. 페르메이르의 실내 그림들이 왜 그렇게 자연스럽게 빛이 드는 것처럼 보이는지, 그 비밀의 일단을 여기서 얻었습니다.

    센터를 나온 뒤에는 현지 생선 가게에서 하링(Haring)을 먹었습니다. 하링이란 청어를 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네덜란드의 전통 음식으로, 잘게 썬 양파와 피클을 곁들여 먹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생선회에 익숙한 편인데도 처음엔 짭짤한 맛이 강해서 적응이 필요했습니다. 두세 점 먹고 나니 그 풍미가 오히려 당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링이 부담스럽다면 키벨링(Kibbeling)을 추천합니다. 흰살생선에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긴 음식으로, 소스에 찍어 먹으면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습니다. 생선가게 앞에서 현지인과 하링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분은 쇼핑 올 때마다 매일 드신다고 했습니다. 그 한 마디가 이 음식의 위상을 설명해 줬습니다.

    요약: 페르메이르 센터는 원화 없이도 안료·구도·빛의 원리를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장소이고, 센터 밖 생선가게의 하링은 델프트 현지 경험의 마침표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델프트 신교회 종탑, 체력이 약해도 올라갈 수 있나요?

    A. 약 376개의 나선형 계단을 쉬지 않고 올라가야 하고 엘리베이터가 없습니다. 중간에 대기 공간이 있어서 잠깐씩 숨을 고를 수는 있지만, 체력에 자신이 없거나 폐쇄 공간에 불편함을 느끼는 분이라면 올라가기 전에 한 번 더 고려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올라가면서 내려갈까 생각했지만, 끝까지 올라간 것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Q. 페르메이르 센터에서 진짜 그림을 볼 수 있나요?

    A. 페르메이르 센터에는 원화가 전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37점의 작품이 고품질 디지털 복제 이미지로 소개됩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원화를 보려면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을 따로 방문해야 합니다. 다만 센터에서는 안료, 구도, 빛의 원리 같은 배경 지식을 충분히 얻을 수 있어서 원화를 보기 전에 들르면 오히려 더 좋습니다.

     

    Q. 델프트 당일치기, 암스테르담에서 얼마나 걸리나요?

    A.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직행열차를 이용하면 약 1시간 안팎에 델프트 중앙역에 도착합니다. 델프트역에서 신교회까지는 도보 약 10분 거리라 이동이 편리합니다. 신교회, 구교회, 페르메이르 센터, 하링 한 접시까지 알차게 보려면 최소 5~6시간을 잡는 것이 적당합니다.

     

    Q. 하링이 입에 안 맞으면 델프트에서 다른 현지 음식은 뭐가 있나요?

    A. 키벨링(Kibbeling)을 추천합니다. 흰살생선 튀김으로 소스와 함께 먹으면 생선 특유의 비린 맛이 없고 바삭한 식감이 좋아서 낯선 음식에 조심스러운 분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생선가게에서 하링 바로 옆에 함께 팔고 있는 경우가 많아 하링과 함께 조금씩 비교해 보기 좋습니다.

     

    결론

    델프트는 빠르게 훑고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도시입니다. 종탑 꼭대기에서 혼자 360도를 돌며 도시를 내려다봤던 그 순간, 페르메이르 센터에서 라피스 라줄리의 가격을 듣고 그림 한 점이 다르게 보이던 그 순간이 기억에 남는 건, 그냥 걸어서 지나쳤다면 절대 얻을 수 없었을 것들입니다.

    네덜란드 일정에 델프트를 넣을 계획이 있다면, 신교회 종탑을 오전 일찍 올라가고 페르메이르 센터에서 점심 전후 시간을 쓴 뒤 구교회와 운하 산책으로 마무리하는 동선을 추천합니다. 마지막에는 생선가게에서 하링 한 접시로 마침표를 찍으면 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r6mWt7BBCx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