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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더블린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유럽 수도라고 하면 웅장한 광장이나 화려한 궁전부터 떠올리게 되는데, 막상 리피강 옆에 첫발을 디뎠을 때 제일 먼저 들린 건 건물이 아니라 골목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소리였습니다. 역사와 문학, 음악이 도시 전체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더블린을 제가 직접 걸으며 느낀 것들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트리니티 대학과 롱룸 도서관 — 책이 만든 도시의 품격
더블린에 도착한 첫날 오전, 저는 트리니티 대학(Trinity College Dublin) 캠퍼스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1592년 엘리자베스 1세의 칙령으로 세워진 이 대학은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 교육 기관입니다. 여기서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란 단순히 역사가 길다는 게 아니라, 아일랜드 근대 지성사 전체가 이 돌담 안에서 시작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캠퍼스 안으로 들어서면 종탑이 눈에 먼저 들어오는데, 그 아래를 지나가는 학생은 시험에 낙제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지나갈 때는 학생들이 일부러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미신이든 아니든, 그 작은 문화 하나가 이 대학에 살아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트리니티 대학에서 제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 단연 롱룸 도서관(Long Room Library)이었습니다. 1712년에 완공된 이 도서관에는 가죽으로 제본된 장서 약 20만 권이 빼곡하게 꽂혀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를 제가 직접 눈으로 확인했는데, 아치형 천장 아래로 끝없이 이어지는 책장을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느낌이었습니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 공간 앞에서는 한참 발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트리니티 대학은 걸리버 여행기의 조너선 스위프트,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그리고 오스카 와일드를 배출한 곳입니다. 더블린이 '문학의 도시'로 불리는 데 이 대학이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 직접 걸어보고 나서야 몸으로 이해가 됐습니다.
- 트리니티 대학 설립: 1592년, 아일랜드 최고(最古) 대학
- 롱룸 도서관: 1712년 완공, 가죽 제본 장서 약 20만 권 보유
- 배출 문학가: 조너선 스위프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오스카 와일드
- 도서관 내부: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 하나로 손꼽힘
제임스 조이스 문학 투어 — 소설 속 더블린을 걷다
더블린을 이야기하면서 제임스 조이스를 빠뜨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저는 다트(DART) 전철을 타고 샌디코브(Sandycove) 해안까지 나갔습니다. DART란 더블린 지역 고속철도(Dublin Area Rapid Transit)의 약자로, 시내에서 해안선을 따라 근교까지 연결하는 도시 철도입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북대서양이 펼쳐질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유럽의 도시 기차에서 그토록 거칠고 푸른 바다를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샌디코브 해변에 도착하면 마르텔로 타워(Martello Tower)를 만나게 됩니다. 마르텔로 타워란 나폴레옹 침략에 대비해 영국이 아일랜드 해안 곳곳에 세운 중세풍 원형 요새로, 지금은 제임스 조이스 타워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그의 대표작 <율리시스(Ulysses)>의 첫 장면 배경이 된 곳입니다.
내부에는 <율리시스> 초판과 희귀본, 그리고 조이스의 데스 마스크까지 전시돼 있습니다. 데스 마스크란 사람이 사망한 직후 얼굴에 석고를 부어 만드는 얼굴 본 뜨기 기록물로, 그 앞에 서니 묘하게 숙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율리시스>를 읽다 중도 포기한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그 난해한 텍스트가 탄생한 공간을 직접 밟아본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시내로 돌아와서는 조이스의 소설 속 주인공 블룸이 점심을 먹은 펍, 데이비 번스(Davy Byrne's)를 찾았습니다. 소설 <율리시스>에 등장하는 고르곤졸라 샌드위치와 버건디 와인을 그대로 주문해 먹었는데, 소설 속 장면과 현실이 겹치는 이 기묘한 경험은 문학 투어가 아니었다면 절대 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일랜드 문화유산청(Heritage Ireland)에 따르면 더블린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이기도 합니다(출처: Heritage Ireland).
아이리시 댄스 공연 — 발끝에서 느낀 아일랜드의 열정
더블린의 밤이 제대로 살아나는 건 어둠이 내려앉은 이후입니다. 저는 미리 예약을 해둔 전통 아이리시 댄스(Irish Dance) 공연이 열리는 펍을 찾았습니다. 공연 시작 전부터 자리가 꽉 차 있었고, 바이올린, 기타, 아일랜드 전통 타악기인 보드란(Bodhrán)으로 구성된 밴드가 먼저 관객들의 열기를 달굽니다. 여기서 보드란이란 아일랜드 전통 타악기로, 한쪽 면에만 가죽을 댄 프레임 드럼입니다. 손잡이를 잡고 안쪽에서 스틱으로 가죽을 두드리는 연주법이 독특해 처음 보는 순간부터 눈을 떼기 어려웠습니다.
드디어 아이리시 댄스가 시작됐습니다. 제가 직접 보기 전까지는 그냥 빠른 발 동작 정도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그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팔과 상체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오직 발만으로 모든 감정과 리듬을 표현하는 방식은 처음에는 낯설었다가, 점점 그 절제미 속에서 폭발하는 에너지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무대 위 댄서들이 객석으로 내려와 관객과 함께 추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식으로 관객과 호흡하는 공연은 어느 나라에서나 인상적이었지만, 더블린에서 이 순간은 특히 달랐습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음악 하나로 한 덩어리가 되는 그 분위기가, 아일랜드 사람들이 말하는 '커뮤니티(community) 정신'이 무엇인지 몸으로 이해가 됐습니다.
아이리시 댄스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아일랜드 사람들의 정체성이 응축된 문화입니다. 영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도 금지된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탄압 속에서도 살아남아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유를 공연장에서 직접 느꼈습니다.
템플 바와 기네스 — 음악과 맥주가 만드는 더블린의 밤
더블린에서 템플 바(Temple Bar) 지구를 빼고 밤 이야기를 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트리니티 대학 학장이었던 윌리엄 템플의 집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이 지역은 지금은 365일 축제가 열리는 더블린의 심장부입니다. 제가 처음 이 골목에 들어섰을 때, 동시에 세 곳의 펍에서 서로 다른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불협화음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게 더블린 특유의 분위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일랜드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기네스(Guinness)입니다. 기네스란 볶은 보리 맥아를 원료로 만드는 흑맥주의 일종인 스타우트(Stout) 계열로, 짙은 갈색에 가까운 검은색과 부드럽고 크리미한 거품이 특징입니다. 여기서 스타우트란 로스팅한 맥아나 보리를 다량 사용해 색이 짙고 쓴맛이 강한 에일 맥주의 하위 장르를 말합니다. 더블린에서 마신 기네스는 다른 곳에서 마신 것과 온도도, 질감도 달랐습니다. 같은 맥주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기네스 측 공식 자료에 따르면 기네스는 1759년부터 더블린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 양조장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현재 150개국 이상에 수출되는 세계적인 브랜드입니다(출처: Guinness 공식 사이트). 그 역사의 시작점인 더블린에서 마시는 한 잔은 그 자체로 작은 의식처럼 느껴졌습니다.
템플 바의 한 펍에서는 현지 뮤지션이 노래하다 멈추고 관객에게 마이크를 넘기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음악이 무대 위에만 있는 게 아니라 공간 전체에 속해 있다는 느낌, 그게 더블린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 롱룸 도서관은 예약 없이도 들어갈 수 있나요?
A. 성수기에는 현장 대기 줄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도 입장까지 꽤 시간이 걸렸는데,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예약을 하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특히 여름철 오전 시간대는 단체 관광객이 몰리므로 오픈 시간 직후나 오후 늦게 방문하는 편이 여유롭습니다.
Q. 아이리시 댄스 공연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더블린 시내 여러 전통 펍에서 정기적으로 아이리시 댄스 공연이 열립니다. 인기 있는 공연장은 사전 예약이 필수인 경우가 많으며, 특히 주말은 자리가 금방 차버립니다. 제 경험상 숙소 체크인 당일에 바로 예약을 시도했더니 원하는 날짜에 자리가 없어서 일정을 조정해야 했습니다. 더블린 도착 전에 미리 예약해두는 것을 추천합니다.
Q. 더블린 문학 투어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A. 제임스 조이스 타워(샌디코브)와 데이비 번스 펍, 오스카 와일드 동상, 트리니티 대학을 연결하면 반나절 문학 투어 코스가 완성됩니다. DART 전철로 샌디코브까지 약 50분이 걸리며, 돌아오는 길에 시내 중심부의 문학 명소들을 순서대로 걸어서 이어가면 됩니다. 가이드 없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제임스 조이스 관련 배경지식이 있으면 훨씬 더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Q. 기네스는 더블린에서 마셔야 정말 다른가요?
A. 제가 직접 비교해보니 확실히 다릅니다. 같은 브랜드인데도 더블린 현지 펍에서 마신 기네스는 질감이 훨씬 부드럽고 온도도 적절하게 관리돼 있었습니다. 스타우트 계열 맥주는 온도와 탭 관리, 잔의 상태가 맛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데, 그 모든 조건이 더블린 펍에서 가장 잘 갖춰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결론
더블린은 '관광하는 도시'가 아니라 '머물고 싶은 도시'라는 말을 저는 지금도 그대로 쓰고 싶습니다. 트리니티 대학에서 느낀 지식의 무게, 제임스 조이스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소설과 현실이 겹치던 순간, 아이리시 댄스 공연이 끝나고 객석과 무대가 하나가 되던 장면, 템플 바 골목에서 어디선가 흘러나오던 바이올린 소리. 이 모든 것이 화려한 볼거리가 아니라 사람의 온도에서 비롯된 경험이었습니다.
더블린을 계획 중이라면 주요 관광지 체크리스트보다는 하루 정도 여유 있게 걸어 다닐 수 있는 일정을 짜보시길 바랍니다. 문학 투어 코스로 반나절을 써보고, 저녁에는 예약한 아이리시 댄스 공연과 기네스 한 잔으로 마무리하는 것만으로도 더블린이 왜 '음악과 문학의 도시'인지 충분히 답이 나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