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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여행지 하면 뮌헨, 베를린, 로텐부르크만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30년 가까이 유럽 도시들을 직접 걸어 다닌 저는, 진짜 독일 중세 도시의 결을 느끼고 싶을 때 뉘른베르크로 갑니다. 이번 봄 2박 3일 일정도 그랬습니다. 가족과 함께 자주 찾는 이 도시는 올 때마다 조금씩 다른 표정을 보여주었습니다.
구시가지, 걸으면서 발견하는 도시
뉘른베르크 구시가지에 처음 발을 들이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준에 맞닿아 있는 중세 성벽(Stadtmauer)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여기서 슈타트마우어란 14세기부터 쌓아 올린 뉘른베르크를 둘러싼 방어 성벽으로, 총 둘레가 약 5킬로미터에 이르는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중세 성벽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가 직접 성벽 위를 걸어봤는데,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붉은 지붕의 구시가지 풍경은 사진으로는 절반도 전달되지 않는 압도감이었습니다.
중앙 광장(Hauptmarkt)으로 내려오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광장 한가운데 자리한 쇠너 브루넨(Schöner Brunnen)은 14세기에 제작된 고딕 양식의 분수로, 40여 개의 인물상이 층층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철창에 박힌 황금 고리를 세 번 돌리면 이 도시를 다시 찾게 된다는 전설이 있는데, 저는 이번이 네 번째 방문이었습니다. 전설이 꽤 효험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광장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성모 교회(Frauenkirche)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파사드 정중앙에 설치된 만클라인우어(Männleinlaufen)라는 천문 시계가 정오마다 황제와 선제후 인형이 행진하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중세의 시간이 아직도 이 광장 위를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슈타트마우어(Stadtmauer): 약 5km 길이의 중세 방어 성벽, 도보 산책 가능
- 쇠너 브루넨(Schöner Brunnen): 황금 고리 전설이 있는 14세기 고딕 분수
- 성모 교회(Frauenkirche): 정오에 작동하는 천문 시계 만클라인우어로 유명
- 성 세발두스 교회(St. Sebaldus): 아담 크라프트의 조각과 2차 세계대전 흔적이 공존
섀우펠레와 뉘른베르크 소시지, 음식이 아니라 추억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뉘른베르크를 찾았을 때만 해도 독일 음식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생가 근처, 500년 된 건물에 들어선 3대째 내려오는 식당에서 섀우펠레(Schäufele)를 처음 먹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섀우펠레란 돼지 앞다리 어깨살 부위를 껍질째 오랜 시간 조리한 바이에른 지방의 전통 요리로, 바삭하게 구워진 껍질 안쪽으로 촉촉한 육즙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칼을 대는 순간 껍질이 부서지는 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합니다.
이번에도 같은 식당을 찾았습니다. 이제는 음식 맛을 확인하러 가는 게 아니라, 그 식당에 앉아 있는 시간 자체를 위해 갑니다. 아이들이 메뉴판을 펼치는 모습, 창밖으로 보이는 뒤러 거리의 저녁 풍경, 맥주잔이 부딪히는 소리. 이런 것들이 쌓여서 뉘른베르크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닌 우리 가족의 '장소'가 되었다는 걸 새삼 실감했습니다.
뉘른베르크 소시지(Nürnberger Rostbratwurst)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지름 약 2센티미터, 길이 7~9센티미터의 작은 크기가 특징인 이 소시지는 1313년부터 제조 방식이 기록될 만큼 유서 깊은 식품입니다(출처: Nürnberger Bratwürste 공식 사이트). 700년 넘게 이어온 식당에서 참나무 장작불에 구워지는 소시지를 보고 있으면, 저 굴뚝에서 700년 동안 연기가 피어올랐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 나면서 묘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페그니츠강변, 뉘른베르크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간
제가 뉘른베르크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간을 하나만 꼽으라면 페그니츠(Pegnitz)강변입니다. 구시가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이 강을 따라 걷다 보면, 뉘른베르크가 얼마나 층위가 깊은 도시인지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됩니다.
강변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이 헹커슈테크(Henkersteg)입니다. 헹커슈테크란 직역하면 '사형 집행인의 다리'로, 중세 시대 뉘른베르크에서 사형 집행인은 일반 시민과 분리된 공간에서 생활해야 했고, 이 다리만이 그들에게 허락된 통로였습니다. 누군가의 고독한 삶과 죽음으로 이어지던 길이 지금은 따뜻한 봄 햇살이 내려쬐는 산책로가 되었다는 사실이, 제 경험상 역사의 아이러니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헹커슈테크를 지나면 바이스게르버가세(Weißgerbergasse)가 나옵니다. 바이스게르버가세란 '백색 가죽 무두질 장인들의 골목'이라는 뜻으로, 중세 시대 이 골목에 가죽 장인들이 모여 살았던 데서 유래했습니다. 지금은 알록달록한 목조 건물들이 줄지어 있어 뉘른베르크에서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히는 거리 중 하나로 꼽힙니다. 직접 걸어보니 동화 속 세트장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색감과 분위기가 남달랐습니다. 작은 카페와 로스터리가 골목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커피 한 잔을 들고 천천히 걷기에 더할 나위 없는 구간입니다.
알브레히트 뒤러와 함께 걷는 도시
뉘른베르크를 여러 번 방문하면서 제가 느낀 건, 이 도시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라는 예술가를 중심으로 조용히 재구성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뒤러는 북방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독일의 화가이자 판화가로, 1471년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나 생의 대부분을 이 도시에서 보냈습니다(출처: 뉘른베르크 뒤러 하우스 공식 사이트). 뒤러 하우스(Dürerhaus)는 그가 실제로 거주하며 작업한 공간으로, 내부에는 당시 작업실의 모습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뒤러 하우스 바로 앞 티어가르트너토어 광장(Tiergärtnertorplatz)에는 독특한 조각상이 있습니다. 기사가 용을 찌르는 성 게오르그상(St. Georg und der Drache) 아래에 거대한 토끼 조각이 놓여 있는데, 이것은 뒤러의 대표 판화 작품인 '산토끼(Feldhase, 1502)'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설치 작품입니다. 판화(Druckgraphik)란 판에 이미지를 새기고 잉크를 입혀 종이에 찍어내는 복제 기술로, 뒤러는 이 기법으로 예술 작품의 대중화를 처음 시도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습니다. 그 토끼 조각 앞에서 아이들과 잠시 멈췄을 때, 500년 전 이 광장을 오가던 뒤러의 시선이 겹쳐 보이는 것 같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성 세발두스 교회(St. Sebaldus) 외벽에 새겨진 아담 크라프트(Adam Kraft)의 조각도 뒤러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뉘른베르크 예술가의 흔적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외벽 곳곳에 파편 자국이 남아 있는데, 그 상처 위에 중세의 정교한 조각이 그대로 살아남아 있는 장면은 몇 번을 봐도 경이롭습니다. 교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도시의 소음이 조용히 사라지고, 높고 넓은 내부 공간이 그 자체로 침묵의 언어처럼 느껴집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뉘른베르크 여행은 며칠이 적당한가요?
A. 제 경험상 2박 3일이 가장 적당합니다. 구시가지 자체는 하루에 핵심 명소를 돌아볼 수 있지만, 아침과 저녁의 분위기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최소 하루 이상은 여유 있게 걷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을 권합니다. 빠르게 체크리스트를 채우는 방식보다 느리게 머무는 쪽이 이 도시와 훨씬 잘 맞습니다.
Q. 뉘른베르크 소시지는 어디서 먹는 게 좋나요?
A. 7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구시가지 전통 식당에서 참나무 장작불에 구운 것을 먹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자우어크라우트(양배추 절임)와 함께 나오는 조합이 기본인데, 제가 직접 먹어봤을 때 광장 주변 카페나 포장 판매점보다 오래된 레스토랑에서의 경험이 훨씬 인상적이었습니다.
Q. 뉘른베르크 구시가지는 대중교통이 필요한가요?
A. 도보만으로 충분합니다. 구시가지 전체가 반경 1킬로미터 내외로 밀집되어 있어서 성벽에서 중앙 광장, 페그니츠강, 뒤러 하우스까지 모두 걸어서 이동 가능합니다. 오히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골목과 골목 사이의 발견을 놓치기 쉽습니다. 관광열차를 이용하면 편하게 전체 지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Q. 아이들과 가족여행으로 뉘른베르크가 괜찮을까요?
A. 제 경우엔 아이들과 여러 번 방문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잘 맞는 도시였습니다. 구시가지 규모가 아이들이 걷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쇠너 브루넨 황금 고리나 토끼 조각상처럼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요소도 곳곳에 있습니다. 숙소에 수영장이 있다면 저녁 시간 활용도도 높아집니다.
결론
뉘른베르크는 한 번 방문하고 끝나는 도시가 아닙니다. 제 경험상 두 번, 세 번 올수록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골목 안쪽의 카페, 성벽 아래 터널에서 느끼는 공기의 온도, 강물 위로 번지는 저녁 빛. 이런 것들은 빠른 일정으로는 절대 만나기 어렵습니다.
독일 여행을 계획하면서 뮌헨이나 베를린만 넣고 계신다면, 뉘른베르크를 하루나 이틀 추가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합니다. 저는 이 도시를 올 때마다 쇠너 브루넨의 황금 고리를 돌리는데, 벌써 네 번째가 되었습니다. 다음 봄에도 아마 이 광장에 서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