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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나폴리 골목에 발을 들였을 때, 저는 솔직히 당황했습니다. 로마나 피렌체와는 전혀 다른 온도였거든요. 스쿠터가 아슬아슬하게 옆을 스치고, 창문에서 빨래가 펄럭이고, 어디선가 피자 굽는 냄새가 끊임없이 날아왔습니다. 복잡하고 시끄럽지만, 그 혼돈 안에 진짜 이탈리아가 있었습니다. 나폴리 골목 미식부터 피자의 원형, 루고마레 해안까지 직접 걷고 먹으며 확인한 것들을 정리했습니다.
나폴리 골목 미식 — 리코타, 올리브오일, 그리고 빵 한 조각
나폴리 음식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바로 테루아(terroir)입니다. 테루아란 토양, 기후, 지역 환경이 식재료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것을 뜻하는 개념으로, 와인에서 자주 쓰이지만 남부 이탈리아 식문화를 설명할 때도 딱 맞는 표현입니다. 제가 직접 먹어보니 이게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요리든 재료 자체에서 맛이 나는 구조였거든요.
나폴리 골목 안쪽 작은 식당에서 처음 리코타 치즈를 맛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슈퍼마켓 리코타와는 질감 자체가 달랐습니다. 리코타(ricotta)란 치즈를 만들고 남은 유청(whey)을 다시 가열해 만드는 2차 응고 치즈로, 쉽게 말해 부드럽고 담백한 생치즈의 일종입니다. 여기에 올리브오일을 한 바퀴 두르고 갓 구운 빵을 찍어 먹으면, 따로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올리브오일도 그냥 넘어가기 어려웠습니다. 남부 이탈리아산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Extra Virgin Olive Oil, EVOO)은 첫 냉압착(cold press) 방식으로만 추출한 것으로, 산도 0.8% 이하를 기준으로 합니다. 여기서 냉압착이란 열을 가하지 않고 기계 압력만으로 오일을 짜내는 방식인데, 이 과정에서 폴리페놀 같은 항산화 성분이 최대한 보존됩니다. 제 경험상 나폴리에서 먹은 음식들은 어느 것 하나 기름지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재료 자체의 신선도와 EVOO 품질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리코타 치즈: 유청을 재가열해 만든 2차 응고 치즈, 담백하고 부드러운 식감
-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EVOO): 냉압착 1회 추출, 산도 0.8% 이하 기준
- 나폴리 빵 문화: 갓 구운 빵에 리코타와 올리브오일을 곁들이는 방식이 일상적
- 가지 요리: 남부 이탈리아 특유의 채소 요리, 기름을 머금어도 느끼하지 않은 것이 특징
이탈리아 농식품부(MIPAAF)는 남부 이탈리아 전통 식재료를 '전통 농식품 목록(PAT)'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습니다(출처: 이탈리아 농식품산림정책부). 나폴리 골목에서 파는 음식들이 이 목록에 포함된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냥 먹던 빵 한 조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피자의 원형 — 나폴리에서 마르게리타를 처음 제대로 먹다
나폴리 피자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개념이 바로 베라 피자 나폴레타나(Vera Pizza Napoletana)입니다. 베라 피자 나폴레타나란 나폴리 피자 제조 방식과 재료의 기준을 규정한 원조 피자의 공식 명칭으로, EU는 2010년 이를 전통특산품보증(TSG, Traditional Speciality Guaranteed)으로 등록해 보호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아무 피자나 나폴리 피자를 자처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제가 직접 나폴리 피자집에서 마르게리타를 주문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이렇게 얇고 부드러운데 왜 무너지지 않지?'였습니다. 도우는 00 밀가루(doppio zero)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여기서 00 밀가루란 이탈리아식 분류 중 가장 곱게 제분된 등급으로 글루텐 함량이 높아 쫄깃하면서도 얇게 펴지는 특성을 가집니다. 서울에서 먹던 피자와 도우 질감이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토핑은 산 마르차노(San Marzano) 토마토와 물소 모차렐라(Mozzarella di Bufala Campana) 두 가지가 핵심입니다. 산 마르차노 토마토는 나폴리 인근 베수비오 화산 지대의 토양에서 자란 품종으로, 과육이 두툼하고 산미와 단맛이 균형 잡혀 있습니다. 물소 모차렐라는 소가 아닌 물소 젖으로 만든 치즈로, 녹으면서 특유의 크리미한 질감이 나옵니다. 제 경험상 이 두 재료가 빠지면 아무리 도우가 훌륭해도 그건 나폴리 피자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나폴리 피자 협회(Associazione Verace Pizza Napoletana, AVPN)는 공식 인증 기준을 공개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 인증 피체리아를 지정 운영 중입니다(출처: Associazione Verace Pizza Napoletana). 저는 이걸 미리 알고 갔더라면 더 많은 피체리아를 들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루고마레와 스파카나폴리 — 해질녘 베수비오를 바라보며 걷다
피자를 먹고 나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별 계획 없이 루고마레(Lungomare) 해안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루고마레란 나폴리 만을 따라 조성된 해안 산책 도로로, 산타루치아 항구에서 포시리포 지구까지 이어집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는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는데, 그 타이밍이 완벽했습니다.
베수비오(Vesuvio) 화산이 도시 뒤편으로 보이는 풍경은 사진으로 봤을 때와 실제로 봤을 때의 스케일 차이가 컸습니다. 베수비오는 유럽 본토에서 유일하게 활동 중인 층상 화산(stratovolcano)으로, 마지막 분화는 1944년이었습니다. 층상 화산이란 용암과 화산재가 교대로 쌓여 형성된 원뿔 모양의 화산을 말하는데, 이탈리아 국립지구물리화산연구소(INGV)가 지금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그 위험한 산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는 풍경이 나폴리라는 도시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루고마레를 걷고 나서 스파카나폴리(Spaccanapoli)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스파카나폴리란 나폴리 구시가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좁은 골목길로, 이름 자체가 '나폴리를 가르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걷다 보면 산세베로 성당, 장인 공방, 오래된 카페, 작은 빵집이 연속으로 이어지는데, 관광 안내서에서 본 것보다 훨씬 생활감이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제 경우엔 에스프레소 한 잔을 서서 마시는 데 1유로도 안 했는데, 그게 가장 인상 깊은 가격이었습니다.
나폴리는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도시 구시가지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화려하게 복원된 문화재보다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골목 자체가 유산이라는 점에서, 그 등재가 빈말이 아니라는 걸 걷는 동안 내내 느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나폴리 피자, 서울에서 파는 것과 뭐가 그렇게 다른가요?
A. 가장 큰 차이는 도우와 토핑 재료에 있습니다. 나폴리 현지 피자는 EU 공인 기준에 따라 00 밀가루, 산 마르차노 토마토, 물소 모차렐라를 써야 합니다. 제가 직접 먹어보니 도우가 얇고 폭신하면서도 변죽 부분만 두툼한 코르니치오네(cornicione) 구조가 확실히 달랐고, 치즈가 식어도 고무처럼 굳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Q. 스파카나폴리 골목은 위험하지 않나요?
A. 나폴리가 소매치기로 유명한 것은 사실이라 완전히 방심할 수는 없습니다. 제 경험상 낮에 사람이 많은 스파카나폴리 메인 골목은 큰 문제가 없었고, 스마트폰을 들고 멍하니 서 있지 않는 것만으로도 상당 부분 예방이 됩니다. 다만 야간에 지도도 없이 샛길로 깊이 들어가는 것은 피하는 편이 낫습니다.
Q. 루고마레에서 베수비오 화산 보려면 날씨가 맑아야 하나요?
A. 맑은 날이 확실히 유리하지만, 해질녘에 연무가 약간 낀 날도 나름의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갔을 때 완전히 맑지는 않았는데도 베수비오의 실루엣은 충분히 보였습니다. 가능하면 오후 4~6시 사이 황금빛 빛이 들어오는 시간대를 노리는 게 좋습니다.
Q. 나폴리 에스프레소가 유명하다던데, 진짜 다른가요?
A. 저도 처음엔 그냥 커피겠지 했는데, 예상 밖이었습니다. 나폴리 에스프레소는 로마보다 진하고 짧게 추출되는 편인데, 설탕을 넣어 마시는 게 현지식입니다. 커피 바(bar)에서 서서 한 잔 마시는 데 1유로 이하인 곳도 있었고, 그 가격에 그 맛이 나온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결론
나폴리를 여행하고 돌아온 뒤,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유명 관광지가 아니었습니다. 골목 안 작은 바에서 서서 마신 에스프레소 한 잔, 리코타 치즈를 바른 빵 한 조각, 루고마레에서 해가 지는 걸 보며 멍하니 서 있던 15분이었습니다. 나폴리는 꾸며진 도시가 아니라 살아있는 도시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한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나폴리는 로마 여행의 당일치기 코스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최소 2박 이상을 잡아야 스파카나폴리 골목과 루고마레를 제대로 걷고 음식도 충분히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자 한 판으로 나폴리를 경험했다고 말하기엔 이 도시가 너무 많은 걸 품고 있습니다. 언제 이탈리아 남부를 다시 갈 기회가 생긴다면, 저는 나폴리를 출발점으로 삼을 것 같습니다.